황흥구 인천지방행정동우회부회장
황흥구 인천지방행정동우회부회장

며칠 전 지역신문에 ‘월남촌’을 개발한다는 기사를 봤다. 월남촌이라는 글자가 반갑게 다가왔다. 처음 듣는 사람은 아마도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중구 도원동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1960년대 후반 월남에서 한진 회사가 하역 운송사업을 할 때 그곳에서 일했던 기술자들이 돈을 벌어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50여 가구로 당시 인천에서 최초의 양옥집이었다고 한다. 율목동에 이어 1972년에 도원동사무소로 발령 받았다. 당시 도원동은 중구의 변두리로 거의 초가집이거나 슬레이트지붕의 판자집이 대부분이었으나 월남촌만큼은 2층 양옥집으로 비교적 부촌이었다. 

찬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 국철을 타고 ‘도원역’에서 내렸다.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 기공식을 했던 쇠뿔고개(牛角峴)가 지금 도원역이 아닌가? 큰길을 건너자 도원동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광성학교’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도원동을 얘기하려면 ‘모모산’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모모’는 원래 복숭아의 일본말로서 일제강점기부터 복숭아밭이라 이름조차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모모산’으로 굳어졌다. 도산정(桃山町)이 변해 도원동(桃源洞)에 이르기까지 복숭아하고는 인연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도원동을 품고 있는 모모산은 50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산자락을 부둥켜안고 살 수밖에 없는 동네처럼 느껴졌다. 원래 산꼭대기인 지금의 광성학교 자리는 일제가 만든 ‘도원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헐레벌떡 언덕을 오르니 학교 담장 옆으로 축대를 쌓은 계단 위로 적산가옥 몇 채가 보였다. ‘부영(府營)주택’이라고 당시 인천부(仁川府)에서 지은 집을 뜻하는데 70년대 초반 당시 근무할 때만 해도 꽤나 여러 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서너 채만 남아 있다. 

이 중에 한 집은 해방 이후까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죽산’ 선생이 한때 살았던 부영주택이 광성중고의 담장 근처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했다. 광성학교 설립자 ‘류충렬’ 이사장은 4·19혁명 당시 서울시경국장을 지내며 발포명령자로 혁명재판에 넘겨져 사형언도까지 받았으나 간신히 감형돼 살아났다. 류 이사장이 이승만 정권에 충성한 사람이라면 ‘조봉암’ 선생은 이승만 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하다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인물 아닌가? 역사란 돌고 돈다고 하더니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학교 정문을 걸어 나오니 바로 아래 도원실내체육관과 수영장이 서로 등을 기대고 자리하고 있다. 체육관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인천전용축구장은 한때 인천공설운동장으로 두 경기장과 함께 인천체육의 요람으로 불리었다. 도원실내수영장 자리에는 원래 1919년 남한 최초 소주를 만들던 ‘조일양조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1978년도 전국체전을 맞아 부지를 내줬다고 한다. 그나마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별관이 2012년까지 있었으나 이마저도 주차장으로 만들어 표지석 하나만 달랑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비록 술 공장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삶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가 있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비탈길을 내려와 ‘도원동주민센터’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 걷다 보니 월남촌이 나왔다. 당시 동사무소 아래로 큰 마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70계단 광장’이라고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그 아래쪽으로 50여 가구가 가지런히 모여 살던 양옥집들. 당시 ‘모모산’기슭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한없이 부러워했으리라. 큰길가 주택에 ‘월남촌 사랑마을 사랑방’이라는 간판에 이끌려 사무실에 찾아 들어갔다. 

자그만 동네지만 역사와 문화가 있는 마을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주거환경 개선과 마을공동체 활동을 벌여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업자와 결탁해 무조건 밀어붙이는 재개발 방식이 아닌 주민들이 스스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며 개발하는 방식이 특이했다. 도원동이 50, 60년 전 그대로 있으란 것은 아니지만 옛 모습이 형태도 알 수 없이 변해 버려 아쉬움을 줬으나 월남촌만큼은 옛 모습을 간직하며 오랫동안 살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추억이 어린 도원동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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