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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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 데미지’라는 군사용어가 있다. 주로 대규모 군사 공격에 따르는 무고한 민간 피해를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부수적 피해’, ‘의도하지 않은 희생’으로 번역되고 있다. 슬프게도 이 용어가 널리 퍼진 계기는 전쟁이다.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전쟁에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살상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에 미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고자, 민간인 피해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고, 급기야 콜래트럴 데미지라는 용어를 꺼내든 것이다.

어쩌면 콜래트럴 데미지는 인간 이기의 극단이다. 자신의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 따위는 부수적 피해로 치부하고 죄의식조차 없앴다는 점에서,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군사정권 시절 야만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인류는 전쟁은 물론 국지적 도발에서조차 콜래트럴 데미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수차례 전쟁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내며 체득한 경험 때문이다. 그 어떤 대의명분도 인간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 그 희생을 당연시하는 순간, 인류 전체의 존엄이 훼손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콜래트럴 데미지가 그 체급을 낮춰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 어학원의 셔틀도우미가 일면식도 없던 배달기사에게 배달료 문제를 항의하던 중, "공부 못하니 배달일을 한다.", "(배달일) 3건 해봐야 겨우 만 원 버는 거 아니냐"며 막말과 조롱에 가까운 발언을 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분노의 이유는 정당했지만, 이후 전개는 예상과 달리 부수적 피해를 발생시켰다. 녹취록과 함께 해당 어학원의 상호와 주소까지 공개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가해자인 해당 셔틀도우미가 사직해 익명의 그림자에 숨어 버린 상태에서, 어학원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원장이 급히 사과를 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막말 전화와 악성 댓글로 인해, 당장 생계를 위해 일해온 원장과 강사, 직원들, 심지어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수업을 듣던 어린 학생들까지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물론 어학원 원장이 직원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은 있다. 하지만 커피를 주문하는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진 개인의 몰상식한 막말까지 해당 어학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너무 과하다"라고 답하고 싶다. 

이는 최근 유명방송인 김새롬의 홈쇼핑 방송 중단 사태에서도 볼 수 있다. 정인이 사건이 몰고 온 충격은 상당했다. 양부모의 파렴치한 행각에 분노하는 한편,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사회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죄의식을 함께 공유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곧 부수적 피해를 만들었다. 분명 김새롬은 생방송 중 "그것이 알고 싶다 끝났나.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당시 해당 프로그램은 정인이 사건을 다루고 있었고, 김새롬의 이 발언은 돈벌이에 급급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폄하한 것처럼 알려졌다. 김새롬은 정인이 사건이 방송 중인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하차를 요구하는 일부 시청자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결국 해당 홈쇼핑 측은 김새롬이 10년간 진행해온 해당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했다. 과연 수많은 채널 속에서 경쟁사도 아닌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방송을 하는 진행자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결국 실언 한마디로, 누군가의 밥줄이 끊긴 것이다. 콜래트럴 데미지 일상화는 위험하다. 

하지만 SNS의 대중화는 사회문제에 대한 상시적 공론화를 가능하게 했지만, 그 공론화 대상이 개인일 경우 벌어지는 부작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긋난 분노의 대상이 나와 내 가족일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라도 콜래트럴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불의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 방향이 어긋난다면 이는 부정의와 같다. 대의명분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 따위는 불도저처럼 밀고 가겠다는 것은 야만 그 자체인 것이다. 어긋난 분노와 그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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