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황금 들녘에 내려앉은 원앙과 봉황.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그것. 여름철 마루에 깔고 앉은 꽃문양 자리. 바로 화문석(花紋席)이다. 

화문석의 시작은 신라시대이다. 고려시대에는 인삼과 함께 주요 교역품이기도 했다. 38년간 고려 왕도 역할을 한 강화도의 화문석은 그 중 특상품이라고 한다. 화문석을 짜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고드랫돌로 너비 6자(181㎝), 7자(212㎝)의 화문석을 2인 1조로 해도 보름이 걸린다.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 또한 여러 손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겨울철 선조들이 구들방에 모여 보내 온 시간까지. 그렇게 나온 화문석. 우리의 대표적인 ‘느림의 미학’이다. 그 화문석이 1천 년의 세월을 잇고 있다. 우리와 함께 백년가게 ‘고려화문석’이 강화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가 지난 3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에 위치한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가 지난 3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에 위치한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1천 년의 숨결 머금은 백년가게 ‘고려화문석’

고려화문석은 고(故) 정택용 씨가 1980년 창업해 지금은 아내 이경옥(60)씨가 4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강화도 중앙시장에서 문을 열어 지금은 풍물시장 ‘화문석, 약초’ 특화구역에서 전통 유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요식업이 대부분인 여느 백년가게와 달리 고려화문석은 가내수공업 판매점이다. 각 가정에서 소규모 공예품을 만든 것을 납품받아 소비자와 연결하고 있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판매품은 강화화문석 외에도 왕골바구니와 일반 돗자리 등이 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여느 돗자리와 다른 두툼한 왕골로 짜인 강화화문석이다. 화문석 중에도 강화 왕골초로 만든 화문석은 상품 중에도 최상급으로 취급된다. 요즘 말로 자리의 ‘진’인 셈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왕골생산지로 경남 안동 예안을 손꼽지만 강화 교동 것도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다.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가 왕골을 접목시킨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가 왕골을 접목시킨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씨는 "같은 왕골로도 짜는 방법에 따라 달리 취급된다. 돗틀에 바디질로 짜면 돗자리, 실을 고드랫돌에 감아 가로장목에 골을 대어 하나씩 엮으면 자리가 된다. 자리로 유명한 것이 강화화문석이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화도 화문석은 한때 5일장이 별도로 섰을 만큼 취급하는 집이 많았다. 농번기가 끝난 겨울철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부업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화문석을 짰으니 장이 서면 2천 장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저 멀리 부산에서도 도매상들이 화문석을 찾아 강화도로 왔으니 여느 자리와는 다르긴 달랐을 게다. 화문석에 들어가는 문양에 따라 달리 불린다. 

이 씨는 "오채용문석은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무늬 꽃자리이고, 오조용문석은 다섯 개 발톱이 달린 용무늬 꽃자리라는 뜻이다. 이 모두 극상품으로 취급돼 조선시대에는 중국에 선물용으로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 명맥만 유지한 강화화문석…‘지자체 지원 시급’

교역품으로 명성을 날리던 강화화문석이 위태롭다. 현재 강화도에서 화문석을 취급하는 곳은 60~70가구가 전부이다. 짜는 사람이 없다 보니 3인 1조로 닷새면 짜던 화문석도 이제 2인 1조로 보름이 걸린다. 이마저도 대부분 60~70대 노인들로 강화화문석 명맥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싸고 넘쳐나는 외산 돗자리도 문제다. 적게는 6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을 웃도는 강화화문석에게는 밀려드는 이들 외산이 버겁기만 하다. 

1996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화문석 작품.
1996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화문석 작품.

이렇다 보니 화문석을 취급하는 판매점도 이제 손을 꼽을 정도다. 이 씨가 운영하는 고려화문석을 포함해 풍물시장에는 5개가 남아 있다. 강화도 전체를 뒤져도 10개가 안 된다. 백년가게 고려화문석을 매일 여는 이 씨에게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씨는 "강화화문석을 볼 날도 이제는 10년 남은 것 같다. 집집마다 화문석을 짜는 사람은 모두 노인들이다. 찾는 사람도 이제 줄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강화화문석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게 화문석 재료인 왕골 수급 문제다. 왕골 재배 과정이 쉽지 않아서다. 일년생풀인 강화 왕골은 4월 초께 파종해서 7월 말께 수확한 후 3∼4일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을 들이는 중간대 부분은 하루 정도 물에 담갔다가 속을 칼로 훑어 내야 물감이 적게 들고 곱게 먹힌다. 줄기 염색은 회색·검은색·붉은색·누른색·진황색·자색·남색·녹두색·반물 등 아홉 가지를 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왕골은 화문석으로서 자리틀에 올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왕골의 수급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하는 이유이다. 현재 왕골은 1㎏당 5만 원에 취급되고 있다. 몇 해 전까지 3만5천 원이던 왕골이 이만큼 오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씨는 왕골을 원활히 취급할 수 있는 계약재배를 통해 지자체가 수매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왕골 재배가 손쉽다는 것은 옛말이다. 파종하고 물을 대고 관리를 해야 한다. 다 자라 누렇게 변할 때까지 소홀하면 안 되는 게 왕골이다. 비바람과 태풍에 꺾이고, 날이 가물기만 해도 왕골대에 거뭇거뭇 피가 생겨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강화 경제의 큰 역할을 차지했던 화문석은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의 자산이다. 지자체의 지원이 어느 산업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화문석의 다양한 상품들.
고려화문석의 다양한 상품들.

백년가게 고려화문석의 역할은 판매만이 아니다. 화문석 생산자들과의 협업으로 왕골 재배부터 제조까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잇는 가교 역할이 더 크다.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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