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급한 상황에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평소 인류애 넘치는 소신을 밝히고 시의적절히 사회를 비판하며 뼈아픈 촌철살인을 설파하던 사람이라도 말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유산 상속 해프닝을 그린 영화로, 당연히 거금을 상속받을 거라 생각한 자손들이 그렇지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여 주는 인간의 이중성을 유머러스하지만 날카롭게 고발한 작품이다. 2019년 올해의 10대 영화로 선정될 만큼 당시 큰 관심을 받은 이 작품은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정통 추리극이란 측면에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베스트셀러 추리 소설가 할런 트롬비가 자신의 85세 생일잔치 뒤 숨진 채 발견된다. 목에 자상을 입은 상태여서 타살이 의심되긴 했으나 모든 가족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어 자살로 판단됐다. 잘나가는 작가이자 백만장자였던 한 집안 어른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슬픔이었다. 그렇게 고인을 추모하는 그때, 경찰과 사설 탐정이 할런 가를 방문해 생일잔치 당시의 행적을 추적한다. 

겉으로는 더없이 화목해 보였지만 샅샅이 들어갈수록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 모두 트롬비와 금전적 원한관계에 있었다. 반면 트롬비의 요양간호사 마르타는 유산 상속과 관련이 없는 외부인인 관계로 일찌감치 살해 용의자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뜻밖에도 유언장이 공개되는 날, 트롬비가의 모든 재산이 마르타에게 상속됐음이 밝혀지면서 일대 혼란에 빠진다. 

가난한 이민자 출신인 마르타를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던 이들은 180도 돌변해 마르타가 할아버지를 유혹해 재산을 빼돌렸다며 그녀를 맹비난한다. 더 나아가 상속 무효화를 위해 마르타가 트롬비를 살해한 정황을 찾으려 혈안이 된다.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탐정 블랑은 사건 당일 있었던 여러 정황들과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느끼는 마르타의 특이성향을 활용해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칼을 꺼내다’, ‘칼로 찌르다’라는 의미로 ‘험악한 상황에 이르다’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백만장자 노인이 칼에 찔려 죽은 상황과 유산 상속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기 위해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상황이 험악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추리 작품의 재미는 결국 범인은 누구이며 살해 동기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너무 쉬워도 혹은 지나치게 어려워도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이브스 아웃’의 감독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플롯에 히치콕의 스릴러를 배치했다"고 언급해 탄탄한 추리소설의 재미에 영화적 스타일을 훌륭하게 결합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에 걸맞게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관객을 할런가에 초대해 탐정 블랑과 함께 진실을 추적해 범행 동기를 찾아내는 쾌감을 매끄럽게 이끌어 낸다. 나아가 재산 상속에 대한 할리우드식 교훈도 함께 주고 있으니 한 번쯤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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