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바람이 꽤 불던 어느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얼어붙은 냇가에 나가 연을 날렸습니다. 친구들처럼 저도 하늘 높이 연을 날리고 싶었지만 제 것은 이내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울음을 터뜨린 기억이 납니다. ‘강풍’이라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비상과 추락이 결정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도저히 연을 날릴 수 없어!’라는 마음이 다시는 연을 날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요. 그래서 영원히 연을 날릴 수 없는 초라한 사람이 돼버리고 맙니다.

 원래 날개가 없이 창조된 새들이 날개를 달게 된 우화가 「내 영혼의 산책」(박원종 저)에 나옵니다. 새가 신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사자에겐 강한 힘이 있고, 뱀에겐 독을 가진 날카로운 이빨이 있고, 말에겐 잘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어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저희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도 적으로부터 저희를 지킬 수 있는 것 하나를 마련해주세요."

 그래서 신이 날개를 달아줬는데, 얼마 후에 다시 찾아와 신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공연히 이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달아주셔서 짐만 됩니다. 날개가 있으니 몸이 무거워 오히려 빨리 달릴 수가 없습니다."

 "강풍 때문에" 또는 "형이 연을 잘못 만들어서"라고 남 탓을 하며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저의 비겁함을 이 우화에서 깨닫고는 이내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누구나 고통 없는 삶을 원하지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고통이 곧 삶이고, 삶이 곧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통 앞에 무릎을 꿇을 게 아니라 고통이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최운규 저)에 남편과 사별하고 일곱 살 아들 하나를 키우는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기자가 "생계는 막막한데 왜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아들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아직 어려서 계속 엄마를 찾기 때문에 정상적인 월급을 받는 일자리는 구할 수 없어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글을 이어갑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버리면 그녀의 생활이 나아질까? 아니다. 그녀의 생활을 힘들게 하는 그 아이가 그녀에겐 살아갈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고통, 어려움, 갈등 등이 혹시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닐까?’

 제가 만약 강풍 속에서도 연날리기를 계속했다면 연날리기의 달인이 됐을 겁니다. 고통은 곧 나를 성장시키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혜의 소금 창고」(김태광)에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의 줄거리가 나옵니다. 2차대전 때 공수부대원으로 참전한 헤럴드 러셀은 전투 중에 두 팔을 잃고 절망할 때, 신에게 "나는 쓸모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자 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지 않느냐?"

 이 말에 생각을 바꾼 그는 의수를 달고 타이프 연습을 한 끝에 자신이 걸어온 길을 책을 썼습니다.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내 육체적 장애는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됐어요. 여러분도 잃어버린 걸 계산할 게 아니라, 신에게 받은 것과 얻은 것을 생각해야 해요.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 신은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시죠."

 고통 앞에서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만큼은 버려야 합니다. 날개 때문에 거추장스럽다고 불평하는 새에게 신도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이 어리석은 새여! 그대는 어찌하여 날개를 지고 달리는가? 날개는 지고 달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저 하늘을 높이 날라고 있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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