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감독, 각본가, 성우, 제작자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한 오손 웰스는 천재로 정평이 나 있다. 하나만 잘해도 충분할 것을, 그는 도전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190㎝에 가까운 장신에 당당한 풍채, 중후한 목소리와 개성적인 외모의 웰스를 영화에서 보면 카리스마에 압도된다. 그래서일까? 영화 ‘제3의 사나이’는 오손 웰스 주연 작품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그의 등장은 고작 10분에 불과한데 말이다. ‘제3의 사나이’는 2차 대전 후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전개되는 범죄 누아르 영화로 조셉 거튼 주연이다. 이 작품은 194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종전 후 미국·영국·러시아·프랑스의 공동 관리 체제에 들어간 오스트리아 빈. 4개국이 통치하는 그곳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거래가 가능한 암시장이 성행 중이다. 미국 출신의 삼류 소설가 홀리 마틴스는 새 일자리를 찾아 빈으로 향한다. 

20년지기 친구 해리가 그를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그가 들은 끔찍한 소식은 해리의 사망 사실이었다. 이국에서 치러진 친구의 장례식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고, 몇 없는 추모객들 속에서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해리의 연인인 안나뿐이었다.

더 이상 체류할 이유를 찾을 수 없던 홀리는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친구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었음을 파악한다. 무엇보다 교통사고 당일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두 명 외에 제3의 사나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의문의 남성의 행방을 추적하던 홀리는 해리가 생전에 가짜 페니실린을 불법 유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본인도 누명을 쓰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은 죽은 줄 알았던 해리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는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사망으로 위장한 해리는 홀리 앞에 나타나 가짜 페니실린 유통으로 취한 이득은 소득세도 없는 돈이라는 막말을 늘어놓는다. 홀리는 우정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연합군이 해리를 체포하는 데 협력한다.

영화 ‘제3의 사나이’는 해리의 가짜 장례식으로 시작해 진짜 장례식으로 끝맺는 구조를 갖는데, 이는 영화 내내 진실과 거짓이 충돌하는 대립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줄거리에서 짐작한 바와 같이 오손 웰스는 해리 역을 맡아 영화 후반부에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검은 그림자 속에 자신의 정체를 숨긴 제3의 사나이의 실체가 골목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해리임이 밝혀지는 첫 등장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후로도 궤변을 말하는 해리의 뻔뻔함은 오히려 당당함으로 느껴질 만큼 매력적으로 그리는 반면, 진실과 정의에 접근하는 홀리의 모습은 당황스러움과 번민으로 가득해 악당보다 매력이 덜 느껴진다.

‘제3의 사나이’는 전후 시대의 혼탁한 상황을 그려 낸 작품으로 선악의 대비를 다루고는 있지만 과거 웨스턴 영화들처럼 권선징악을 통한 선명한 해피엔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를 위해 우정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이 느끼는 비애의 정서가 더 크게 다가온다. 

옳은 일을 하려는 홀리를 향해 해리는 "세상은 영웅을 원치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지만, 이는 범죄자가 메달리는 합리화일 뿐이다. 비록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우정 혹은 의리에는 반대될 수 있겠으나 혼란한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덮지 않는 정의로운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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