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개혁이라는 슬로건은 어느 시대나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부도덕하다는 미명하에 지난 권력을 응징하기 위해 내놓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이다. 특히 이 정부는 유독 적폐 청산과 개혁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집착하면서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개혁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개혁은 허망한 혀 놀림에 불과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집권 유지를 위한 적폐 청산은 교활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반드시 전염병 사태가 아니더라도 이 정부 들어서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외교, 안보 등 국가 전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미 정치는 다수당의 전횡이 일상화됐고 민생경제는 더욱 위험한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고용은 얼어붙고 저소득층 소득은 눈에 띄게 줄었으며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여기에 세금으로 만든 가짜 일자리만 난무한다. 소득 격차를 비롯해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한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서울 집값은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역대 정권 가운데 출생률 반등이 전혀 없었던 유일한 정부로 기록 중이며 혁신 학교는 이미 실패한 교육임이 판명됐다. 집권 세력은 자신들은 정의와 개혁의 주체이고 재벌이나 지난 정권은 모두 적폐의 대상이며 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역사적 사명이라며 그런 검찰을 추겨 세웠다. 반면에 자신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반개혁적인 행태로 규정하며 그런 검찰은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정권을 빼면 그동안 모든 정부가 국민의 뜻과 국가의 이익에 부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가장 극적이고 효과적인 적폐 청산으로는 문민정부에서 행해졌던 막강한 군부 내 조직이었던 ‘하나회’ 척결과 무기명 또는 차명 거래를 금지한 금융실명제 실행을 들 수 있다. IMF는 국민의 정부에 의해서 극복됐고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지지 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성사시켰다. MB 정부는 IMF 이후에 국제적 금융위기에 직면해서 파탄 직전까지 치달았던 절체절명의 한국 경제를 기적적으로 구해냈다. 이 정부가 마음껏 돈을 살포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극성 맞게 거둬들인 세금 덕분이다. 

물론 이것으로도 모자라 적자 국채를 마구 찍어내고 있지만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가계 소득 격차가 가장 적었던 시기도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개혁은 권력 집단의 세력을 강화하고 자기 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교묘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민생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약자의 생활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성실한 정책적 행위이다. 예컨대 각종 특산물인 공물을 쌀로 통일하고, 과세 기준도 종전의 가호(家戶)에서 토지의 결수로 바꾼 조선시대의 대동법은 백성들의 세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데 기여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개혁 입법이었다. 

이이에 의해 처음 도입되고 유성룡에 의해 제도화된 대동법은 정도전, 조광조와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 정치가로 평가받는 김육에 의해서 전국적인 보급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양반 지주들의 입장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던 김집과 송시열에 맞서 약자의 입장에서 공납에 대한 농민들의 과도한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애썼던 대표적인 정치가가 바로 김육이었다. 1980년대 심각했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대호황의 길을 열었던 김재익이라는 탁월한 관료 뒤에 전두환 대통령이 있었듯이 김육의 뒤에는 그를 기용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효종이 있었다. 

광해군을 비롯해 조선시대 최악의 왕으로 꼽히는 인조조차도 대동법 시행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인민들의 고통을 쉽게 외면하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정치 권력 강화를 함부로 도모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주인공 ‘광해’는 백성들의 고통에 분노하며 대동법 실시를 강력하게 지시하면서 서인들에게 명 황제가 그리 좋으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라고 일갈한다. 이런 장면이 지금의 우리가 처한 현실과 겹쳐지는 것이 우연은 아닐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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