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편지를 쓸 때 그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어쩐지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단어만으론 감정을 오롯이 전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소중한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시(詩)가 탄생한다. 유명한 작가나 대단한 문장가가 아니더라도 시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사랑에 빠지기 위해, 더 정확히는 이성의 호감을 사기 위해 시인이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 순박한 시골 총각 마리오는 여성 팬이 많은 시인 네루다를 보며 시인을 꿈꾼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성 교제, 그뿐이었다.

 칠레를 대표하는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길에 오른다. 시인은 이탈리아 나폴리 앞의 작은 섬에 여정을 풀고, 마리오는 네루다의 전용 집배원으로 임시 고용된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여성들의 팬레터를 보며 마리오는 막연히 시인을 동경한다. 난생처음 네루다의 시를 읽은 그는 언어로 함축된 세상에 호기심을 느낀다. 처음엔 시의 해석을 요청하지만 시인은 시는 시의 언어로만 이해될 수 있으니 그 감정을 직접 느껴 보라 권한다. 그렇게 마리오는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진 시를 통해 일상이 품은 특별함과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평생을 감정 없이 바라본 바다, 파도, 그물이 창작의 영감이 되고, 환하게 뜬 보름달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도 피어난다. 어디까지나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접근했던 시가 마리오의 삶에 들어오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과 주변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우체부라는 뜻의 ‘일 포스티노’는 수채화처럼 맑은 해안에서 펼쳐지는 시인과 우편 배달부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칠레의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실제로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 시절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비극적인 현대사를 무대로 하는 ‘일 포스티노’는 그렇다고 엄숙하거나 딱딱한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외딴섬의 바람소리, 밤하늘을 수놓은 총총한 별빛, 시리도록 푸른 해안을 보고 있으면 관객들도 자연스레 시인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고요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재확인시켜 주는 동화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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