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시조는 우리의 으뜸 시가다. 천여 년 전부터 그 시대 상황을 읊조려온 가락이다. 여기서는 음악(시조창)으로서가 아닌 문학(정형시)으로서 시조를 다룬다. 시의 갈래는 그 형태상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은 자유시가 우리 시가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시조는 역사적 전통성, 고유한 정통성, 운율의 정형성으로 볼 때, 우리의 대표 시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유시의 아류처럼 취급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중견 시조시인들조차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시조(時調)’ 대신 ‘시(詩)’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시조가 시의 범주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시가 곧 시조인 것은 아니다.

시조와 자유시를 다 창작하고 있는 나로서는 과연 자유시가 우리 시조와 전혀 관계없이 생긴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간 자유시는 약 1세기 전 일본을 거쳐 들여온 서구풍 문학이며, 우리 풍토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자유시라고 하여 이름 그대로 자유롭게 마구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드러난 외형률 외에 보이지 않는 내재율이 있어, 이를 나의 몸에 배게 하는 데에는 상당한 습작 과정이 뒤따랐다. 오히려 자수율을 지켜 창작하는 시조보다도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흔히 1908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신체시에서 1919년 주요한의 ‘불놀이’를 자유시의 효시로 꼽는다.

시조는 창법상의 관점에서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문학상의 관점에서는 단시조, 중시조, 장시조로 나누기도 한다. 2016년 12월 15일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등 6개 단체는 합동으로 ‘시조명칭과 형식 통일안’을 선포했다. 이에는 우선 단시조와 연시조로 분류하고, 예외로 장시조를 변격시조로 인정했는데 이것이 곧 사설시조다.

이 칼럼에서는 일반인들이 더 쉬이 알 수 있는 사설시조를 제목 속에 채택했다.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기존의 사대부시조에 반해 나타난 평민시조다. ‘사설’(辭說)은 말 그대로 길게 늘어놓는 온갖 소리라 할까. 「청구영언」에 나오는 ‘만횡청류’가 최초의 작품으로 보이며, 시조 3장 가운데 주로 중장이 길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형식 때문에 어떤 이는 사설시조를 정형시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만횡청류를 장시조가 아니라 다만 사설이라는 하나의 문학 장르일 뿐이라는 이도 있다. 

그래도 대개는 시조의 종류로 인정하느니 만큼 이를 활용한다. 17∼18세기 피지배계층인 평민들은 기존 사대부 지배 질서에 대한 반발과 비판의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판소리, 탈춤과 함께 거침없이 사설시조로 생각을 표출했다. 이른바 자유시가 없던 시절에 정격을 벗어난 사설시조가 먼저 길거리 서민문학, 즉 위항문학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사설시조 가락의 입담과 재치 속에는 해학과 풍자가 묻어났다.

"백령도 구경 잘 하고 돌아가는 길이렷다…저 아줌씨 째지는 소리 이 아저씨 토하는 모습/비닐봉지며 휴지 달라 온 선실이 아수라장/세상에 공짜 없네 어젯밤의 여흥 끝이/얼굴은 죄 백짓장에 온 천지가 빙빙 돌고/애간장을 태우다 못해 오장육부를 다 토한다…정녕코/얄궂게시리/타령 한 곡 더 올렸어." 내 졸음 사설시조 ‘뱃멀미 사설타령’의 중장 일부와 종장이다. 마침 창작 초기에 쓴 것이 있어 인용해봤다.

최초의 자유시를 발표한 주요한이나 최남선 같은 이들은 일제강점기 전후 일본 유학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시조창작을 기본 소양으로 하고 있었다. 최남선은 한국 최초의 현대시조집 「백팔번뇌」(1926년)를, 주요한은 시조집 「봉사꽃」(1930년)을 출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일본 유학파를 비롯한 식자층은 사설시조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는 현대 자유시의 모태가 됐으며,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았다고 한 말(서강대 박철희 전 교수의 견해)에 수긍이 간다. 압축과 응결에 의한 줄글 형식의 산문시에는 앞의 ‘불놀이’ 외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정지용의 ‘백록담’ 등이 있다. 사설시조가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기폭제였다고 한 이도 있다. 사설시조는 자유시와 산문시의 토양임에 힘이 실린다. 한 수 시조로 되살린다.

- 사설시조 -

 시조라는 이름 달고
 홀대 속에 지냈어도
 
    거리거리 불려 불려
 사설 가득 쌓인 토양
 
 그 위에
 틔운 자유시
 산문시로 꽃피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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