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코로나19로 인해 국민경제가 위축된 지 1년이 넘었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전반적인 경제지표가 시원치 않다. 특히 소득이 적거나 가진 재산이 없는 이들에게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제상황은 생존의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20조 원에 육박하는 4차 재난지원금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지급될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 네 차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항상 들어야 했던 말이 있다. 바로 국가재정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다. 물론 정치권에서 지급 방법이나 액수 등을 놓고 갈등하는 모습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당국자들은 재정균형이 특정 시점의 경제정책 수단이지 국가정책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기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재정의 목표가 돼야 한다. 

우리는 국가재정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내 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느냐’, ‘나라 빚이 늘어나면 국가가 망한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빚이 얼마다’ 등의 말을 듣는다. 언뜻 생각하기에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국가경제와 가정경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에서 나오는 말이다. 외국에서 빚을 내지 않는다면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빚은 곧 민간의 자산이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국채의 10~15% 내외만 외국인에게 팔리도록 관리되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채권은 우리 국민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2018년까지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흑자였고,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4%에 이른다. 이렇듯 국가경제는 흑자를 보고 있지만 지난해 우리 국민 상당수가 가계빚을 내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국가의 지출을 망설인다면 우리나라 거시경제 전체의 힘이 떨어지고 경제 규모가 작아지게 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줄이는 방법 중 지금은 분모, 즉 GDP를 키워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빚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국민이 개인 빚을 계속 늘려야 하는 형편이다. 

지난 3일 ‘코로나 위기 1년, 평가와 과제’라는 한 토론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은 한국 3.4%, 중국 4.7%, 프랑스 7.7%, 독일 11.03%, 미국 16.7%, 영국 16.3%, 일본 15.6%로 나타났다. 이 예산은 각국 정부가 자영업자와 일자리 보호 등을 위해 쓴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지원금의 규모가 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민영화, 작은 정부, 긴축재정 정책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설파하거나 때로는 강요했던 IMF나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조차도 이제는 각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국제기구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10년 전인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부터 입장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 전 세계적인 국가 간 불평등은 물론 국가 내의 불평등이 심화됐고, 저성장 기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 문제의 권위자인 브랑코 밀라노비치라의 연구에 따르면 1988년에서 2008년 사이 1인당 실질소득 증가액의 대부분을 상위 5%가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세계적인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평등은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게 만든다. 균형재정이라는 정책수단이 정책의 목표가 되는 순간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삶을 책임지지 않게 된다. 어려운 국민의 삶은 물론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확장적이고 공격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먹이 피라미드 중하위에 위치했던 호모사피엔스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사회를 이루게 된 이유는 협력과 연대에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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