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세이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들이 한결같은 존경을 표하는 감독이 있다.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 ‘진정한 거인’으로 칭송되는 이 사람은 ‘세기의 아시아인’으로도 선정된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다. 영화 ‘라쇼몽(1950)’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독특한 서사 전개와 생동감 있는 화면 구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후대 영화인에게 귀감이 됐다. 뿐만 아니라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적 메시지는전후시대 황폐한 삶을 살아가던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오늘 소개하는 ‘멋진 일요일(1947)’은 구로사와 감독의 초기 작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다.

 전쟁의 상처가 다 가시지 않은 도쿄. 유조와 마사코는 오래된 연인으로 근무가 없는 일요일에만 데이트를 즐긴다. 꼬박 일주일을 기다려 반갑게 만났건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은 한숨만 나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코는 언제나 명랑하게 남자친구인 유조를 격려한다. 돈이 없어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고 그로 인해 결혼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지만 마사코는 신축 견본주택을 보러 가자고 한다. 구경은 공짜이니 괜찮지 않느냐는 제안마저 남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이후 기분 전환으로 동물원을 찾은 두 사람은 우리에 갇힌 동물보다 자신들의 신세가 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중 저렴한 음악회 전단을 발견하고 콘서트 시간에 맞춰 열심히 뛰어가지만 암표상들이 표를 점령해 버려 그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비마저 내리고,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던 유조는 결국 마사코와 다툰다. 일련의 상황이 미안했던 남자는 마사코와 커피숍으로 향하고, 모처럼 즐기는 차 한 잔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비싼 커피로 잘못 주문되는 바람에 돈이 부족해 또다시 좌절감을 맛본다.

 험난한 세상일수록 꿈을 갖자는 여자와는 달리 비참하고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다 자존감마저 무너져 버린 요조. 희망을 회복하기 위해 남자는 텅빈 공연장에서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상상 콘서트를 개최한다.

 영화 ‘멋진 일요일’은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로맨스 영화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당시의 시대상 또한 가감없이 담아낸 작품이다. 미래를 긍정할 희망이 없이는 살아갈 이유조차 찾을 수 없는 절박한 남녀는 급기야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가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도록 박수 쳐 달라"고 부탁한다. 박수가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박수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읽은 것인지 영화는 희망적인 뉘앙스로 마무리된다.

 상상 콘서트 후 눈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은 다음 일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시종일관 침울했던 남자는 마음속 작은 변화를 깨닫고 힘차게 기지개를 켠다. 세상살이가 의욕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떠한 조건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펼쳐질 거라는 한 조각의 희망은 여전히 필요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