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처럼 붉고 화려한 꽃이 있는가 하면 단아하고 청순한 매력의 이름 모를 꽃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취향에 따라 갈릴 뿐 정답은 없다. 어떤 꽃이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오즈 야스지로의1958년작 ‘피안화’는 두 부류의 꽃 중 후자를 닮은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갈등 구조도 약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중무장한 영화도 아니다. 카메라는 정적으로 대상을 비추고 화면을 채운 공간은 집 안, 회사, 식당, 기차역 등 일상의 장소들이다. 오락용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오즈 감독의 영화는 특유의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 속에서 전달되는 공감의 힘이 있다. 평생을 미혼으로 산 감독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가족과 결혼이었다. 영화 ‘피안화’ 역시 결혼으로 빚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담았다.

회사 중역인 히라야마는 주말이면 결혼식장 참석으로 바쁘다. 친구 자녀들이 대부분 혼사를 치를 만큼 성장했고, 이는 히라야마의 두 딸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신망이 두터운 히라야마가 요즘 들어 많이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결혼 관련 고민이었다. 자녀 배우자 찾기의 어려움이나 부모가 반대하는 혼인을 강행하려는 자식과의 갈등을 하소연하는 지인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그때마다 히라야마는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열린 사고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식이 행복하다면 중매결혼을 고집할 필요도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견을 내세울 만큼 당시 사회분위기보다 앞선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넓은 이해심은 자신의 자녀들 앞에서는 발휘되지 않았다. 큰딸 세츠코가 느닷없이 결혼 승낙을 요청하고, 아버지는 어이없음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낀다. 그간 사랑으로 키운 딸이 출가 후 고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좋은 집안의 배우자를 맞춰 주려 했건만 딸은 "제 행복을 스스로 찾으면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지인들과 그를 뺀 다른 가족들은 세츠코의 남자친구를 받아들이고 예식 절차도 알아서 진행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아버지는 도쿄에 신혼 살림을 차린 딸을 만나러 기차에 오른다.

연애결혼을 하려는 딸과 이를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린 영화 ‘피안화’는 1958년이라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요즘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배우자 선택의 결정권이 당시에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방점을 찍은 지점은 연애결혼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부모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충돌을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키운 품 안의 자식을 보내야 하는 쓸쓸함,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모와의 갈등도 피하지 않는 자녀들의 변화된 인식과 사회분위기조차 온전히 부모들의 몫임을 담담한 어조 속에 분명히 전달한다. 오즈 감독 작품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관조적인 분위기는 일면 씁쓸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오는 슬픔을 홀로 삭이는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자녀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첫 컬러 영화인 ‘피안화’는 우리나라에서 ‘달맞이 꽃’으로 개봉했는데 이는 ‘기다림’이란 꽃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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