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
83분 /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작품마다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김종관 감독이 영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죽음, 상실 등 삶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소설가 ‘창석’(연우진 분)이 며칠간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들에게 털어놓는 자신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한다.

 극 중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인 미영(이지은)은 삶이 따분하다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학교 후배이자 편집자인 유진(윤혜리)은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담담하게 말한다. 우연히 마주친 지인 성하(김상호)는 아픈 아내를 살리기 위한 희망을 찾고,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바텐더 주은(이주영)은 손님들의 기억을 모은다.

 이 영화는 시간에 마모하는 삶을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채워 간다. 창석이 만나는 인물에 따른 4개의 에피소드 중 미영 편을 자세하게 설명한 건 아무도 없는 곳의 정서와 주제를 그대로 압축해서다. 창석과 미영이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커피숍 창밖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쳐 간다. 그 모습을 보느라 좌우를 오가는 미영의 눈동자가 시계추 같아 꼭 이들 주변으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는 듯하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순간은 지나가면 과거가 된다. 그래서 우리 삶이 향해 가는 미래의 목적지는 죽음이다. 우리는 삶을 흘려보내면서 상심하고 언젠가 닥칠 죽음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꿈과 현실, 생과 사 등의 경계가 없다. 시간만이 관통해 존재할 뿐이다. 

 김 감독은 영화 간담회에서 "빛과 어둠이 있다면 어둠의 영역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을 관찰해 보고자 만든 영화"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때로는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위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죽음을 바라보며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늙음에 대한 서글픔이 나오지만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는 것에 대한 동경,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사람 간 대화 위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김 감독의 스타일이 배어 있는데, 이 이야기들이 의미하는 바는 두루뭉실하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31일 개봉한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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