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뽑는 선거일이 다가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뉴스에서 들리는 소식은 어둡기만 합니다. 후보들의 주장은 매우 단순합니다. "너는 나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당선돼도 그는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을 시장으로 둔 시민들의 자존감은 크게 손상되고 말 겁니다. 

맹자는 지도자의 덕목을 ‘종신지우(終身之憂)’, 즉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근심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거에서 내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개인의 근심이 아니라 ‘국민이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근심이 종신지우입니다. TV에서 보는 후보자들의 이전투구를 보면서 종신지우의 덕을 갖춘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유독 저만의 느낌이겠습니까?

맹자는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인배들의 마음을 ‘일조지환(日朝之患)’, 즉 ‘한때의 근심이나 걱정에 사로잡히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일조지환에 따라 웃다가 울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만큼은 일조지환을 뛰어넘어 평생 갈고 닦아야 할 종신지우의 덕을 갖춰야만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종신지우를 가진 지도자로 세종대왕을 들 수 있습니다. 세종의 개혁과제를 두고 신하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황희와의 인연을 살펴보면 세종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세종 리더십」(박현모 지음)에 따르면, 황희는 원래 세종과는 뜻이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왕위 계승을 황희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세종은 성실성과 설득력이 탁월한 그에게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황희는 권력을 잡은 후 매관매직을 일삼고, 사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조서를 변조했으며, 사건의 심리를 지연시켰다"라며 탄핵을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태에 직면한 세종의 태도입니다. 세종은 청탁 사건만 제외하고 다른 허물은 모두 용서해주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용서받은 황희는 세종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옳은 정치를 하는데 쏟아부었습니다. 저자는 "황희 역시 보답하듯, ‘파직사건’ 이후 줄곧 청빈한 재상으로 대업을 보필했다. 세종실록에서 인간 황희의 갖가지 허물이 정승 황희의 공적에 의해 승화됨을 읽을 수 있음은 한국 정치에 희망을 주는 일이다."

세종처럼 종신지우의 덕을 쌓은 지도자라고 해도 평생을 두고 자신의 초심을 다지면서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일조지환의 소인배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예가 고려의 문을 열도록 기반을 다진 궁예입니다. 「리더십 바이러스」(김우형 저)에 따르면, 궁예는 버림받은 신라 왕족의 한을 삭이면서 착취와 수탈이 없는 미륵 세계를 꿈꾸며 종신지우의 큰 뜻을 세웠습니다. 

초기에는 그의 비전과 리더십이 발휘돼 폭발적으로 세력이 규합됐고 그 기세가 날로 확대됐습니다. 그는 식사 때나 잠잘 때도 군사들과 함께 지냈고, 신상필벌에 따라 군율을 엄격히 적용했습니다. 이런 궁예의 태도는 당시 최고의 요충지였던 송악의 호족들마저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진영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것이 궁예의 종신지우가 공감을 얻은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면모를 잃고, 의심과 독기로 가득 찬 독재자로 바뀌고 맙니다. 그의 절대성은 ‘관심법’으로 표출돼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다고 하며 의심이 가는 사람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렇게 소인배로 전락한 궁예는 자신이 그렇게도 신뢰했던 왕건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일조지환의 태도가 주는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선거가 축제가 되려면 선거가 희망의 계기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후보자들이 내놓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조지환의 ‘나쁜 시장’이 아닌 종신지우의 ‘좋은 시장’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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