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울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고 끝내는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얼마 전 정부에서는 국민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상담과 치료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5년간 2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 사업 명칭은 ‘정신건강서비스’. 하지만 국민의 정신은 코로나만 잡는다고 건강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 확산은 어쩌면 내연하고 있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표층으로 끌어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빈부격차, 노동, 안전 시스템, 교육, 환경, 종교, 언론 등 이미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사회 내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이 정치 건달들에 의해 은폐되거나 미봉되다가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순간 코로나를 계기로 폭발했다는 말이다. 

물론 현재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눈앞의 병증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가 위와 같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료하지 않는 한 코로나를 구축(驅逐)한다고 해도 국민의 정신건강은 나아질 리 만무하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보호 사각지대에서 학대받다 죽어가는 아동들 또한 부지기수다. 언론의 견강부회와 교육의 난맥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서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며 아름다운 산천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의 경쟁적인 개발지상주의는 문화유산조차 환금성이 없다며 철거해 버리고, 명산의 심장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콘도를 짓고… 운하를 만든다며 강바닥을 헤집어 물을 죽이고 생물을 멸절시킨 앞선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의 처참한 결과를 목도하고도 인간의 탐욕은 이처럼 한결같으니 분노보다 이제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문제가 이런데도 권력을 잡은 정부 여당과 여야 정치가들, 일부 교수와 종교인 등 소위 사회지도층(현재의 능력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직위가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말하는 것이다. 지도층은 개뿔!)이라 분류되는 사람들은 혹세(惑世)를 위무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활용해 반사적 이익이나 얻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들에게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다. 다만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술책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깊고 넓고 진중하게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종교(인)조차 특정 정치세력의 견해를 대변하며 독신(瀆神)을 서슴지 않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언급해 본다면, 얼마 전 양부모에게 학대받다 비참하게 어린 생을 마감한 정인 양의 양부모가 모두 개신교 목사의 자녀였다는 것도 나에게는 뜻밖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타락했고 그만큼 악마의 모습을 띤 종교인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난맥이 임계점 근처에서 비등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전무후무한 감염력을 지닌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났다. 노골적인 공격성과 의뭉스러운 은폐 기술, 가증스러운 접근성을 고루 갖춘 이 미증유의 감염병이 삶의 현장 위로 점령군처럼 들이닥치자 그간 혹독하게 앓고 있던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사회적 병통들은 해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사고의 중심에는 오로지 코로나바이러스만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앞서 말한 닫힌 사회와 그 지지자들인 사회지도충(蟲)들은 교묘하게, 아니 당연하게 이 코로나 국면을 활용하기 급급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병통의 심각성을 희석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과 곡학아세와 혹세무민을 희석해 전선(戰線)을 오로지 코로나 문제로 집중할 수 있었으니 닫힌 사회와 그 지지자들은 얼마나 다행스러웠을까. 당면 현안인 코로나의 완전 구축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그로 인한 민생의 피폐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감염병 구축에는 너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이 전인미답의 바이러스를 구축하기 위해 한마음이 되어야만 우리는 이 힘겨운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코로나 구축 싸움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코로나의 저항과 공세가 극렬하다는 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불거진 우리 사회의 부조리들이 더욱 증폭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따라서 국민정신의 혼란과 불안을 위무하고 진정시켜 평정심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수조 원의 자본을 투자해서 정신상담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계기로 도대체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은 무엇이고 그것의 해결에 가장 미온적인 세력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명확히 변별하는 것도 정신의 혼란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민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현 정부가 그간의 실책과 실기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또 그것이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가장 질 높은 서비스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퇴행의 무리 쪽에 설 것인지 국민의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에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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