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세상을 시끄럽게 달구던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가 끝났습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건넵니다. 부끄러운 선거판을 접하면서 「깜」(이문영 저)에 나오는 제나라 선왕과 맹자가 나눈 문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선왕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백성의 원성이 자자할 때, 맹자가 "만약, 신하 가운데 자기 처자식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멀리 다른 나라에 다녀왔는데, 그 친구가 자기 신하의 처자를 헐벗고 굶주리게 했다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라고 묻자, 선왕은 "당연히 절교하라고 하겠소"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그럼 여기 법관이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부하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선왕은 "물론 파면시켜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온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라고 맹자가 묻자, 선왕은 말문이 막혀 공연히 좌우를 돌아보고 딴청을 피우며 화제를 돌렸다고 합니다. 며칠 뒤 선왕이 물었습니다. "옛날 주나라 문왕이 짐승을 풀어놓고 즐기던 동산은 사방 70리나 되었을 만큼 넓었는데도 백성은 그것을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백성들은 왜 이것을 크다고 여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소."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나 되었지만, 나무꾼이 들어가 땔감을 구할 수 있었고, 사냥꾼도 들어가 꿩이나 토끼를 잡을 수 있었죠. 이처럼 문왕의 동산은 누구나 들어가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작다고 느낀 거지요. 그런데 제가 처음 제나라 국경에 이르렀을 때, 혹시 제나라에서 철저하게 금지하는 법이 있냐고 물으니, 관문 근처에 사방 40리나 되는 임금의 동산이 있는데, 그 안에서 사슴을 죽인 자는 살인한 자와 마찬가지로 처벌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임금께서는 나라 안에다가 사방 40리나 되는 함정을 파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백성들이 임금의 동산이 넓다고 여기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흔히 정치인들은 시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자신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맹자의 일갈처럼 시민이 원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관건은 ‘어떻게 시민들의 아픔을 알 수 있느냐?’입니다. 선거운동 내내 후보자들은 신발이 닳도록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이 만들어갈 세상을 외쳤을 겁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부터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아픔을 알 수 있으니까요. 

20세기 ‘모든 테너의 우상’으로 불린 엔리코 카루소의 일화에서도 그런 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동 가득 한 뼘 이야기」(최헌 저)에 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를 알아본 웨이터가 인사를 한 뒤 평소 그의 열렬한 팬인 주방장에게 큰 소리로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주방장이 "선생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하자, 카루소는 흔쾌히 노래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방장은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페라 극장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선생님의 노래를 이런 곳에서 듣다니, 제게는 역사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다 나온 이런 꼴로 들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고 말고요. 제가 한 곡 들려 드리지요."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그치자 노래했습니다. 모두 감격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자넨 왜 함부로 이런 데서 값싸게 노래 부르는 거야?"라고 하자, 그는 "저 요리사도 예술가일세.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것도 예술이지. 예술가가 예술가를 위해 노래 한 곡쯤 부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라고 답했습니다. 식당 종업원들을 위해 정성껏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정치인들 역시 이런 태도로 시민들을 대해야 그들의 아픔과 소망을 들을 수 있고, 그것을 정책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맹자의 일갈이 담고 있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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