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나는 현재 시조가 있는 포켓용 칼럼집을 퇴고하고 있다. 이 기호포럼에서 2019년에 발표한 내용들이며, 책명은 「우리 時調(시조)와 어우러진 한글과 韓字(한자)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런데 항상 머리말 끝에 연도를 표기할 때면 머뭇거리게 된다. 그동안 8권의 창작 시가집을 상재할 때마다 그랬다. 다시 한 번 내 졸저들을 들춰봤다. 한결같이 단기 연호를 썼다. 나도 모르게 그리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하여 어떤 종교와도 관련이 없다. 

딱히 말한다면 먼먼 조상으로부터 연면히 이어받은 내 몸속 유전자가 그리했을 것 같다. ‘연호’(年號)는 연도를 세기 위해 붙이는 명칭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오늘날 서기를 공용으로 쓰고 있다. ‘서기’(西紀)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단기’(檀紀)는 우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해인 BCE 2333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1948년 정부 수립 해부터 단기 연호만을 공용으로 사용했으나, 5·16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1961년 말에 폐지되고 그 이듬해부터 서기 연호를 사용했다. 1개 조문으로 된 ‘연호에 관한 법률’ 연혁을 살펴봤다. 외교면을 위시해 일반행정에 많은 애로와 결점이 있어 서기 연호로 바꾼다고 돼 있다. 그 당시 혼란한 국정 상황에서 혁명적 조치의 일환으로 취해진 일이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라 살림이 좋아져서 지난해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선진국가로 올라선 이즈음은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 정책 당국의 보다 세심한 대처가 요구된다고 할까. 이른바 구당 침술로 많은 환자들을 고쳐주다가 작년 105세로 별세한 김남수 옹의 경우를 보자. 나는 가까이서 그 분의 침술을 체험한 바 있다. 한때, 오죽했으면 이 나라를 떠나 중국에서 시술했을까. 거기서 화타급 대우를 받지 않았나 싶다. 

5·16 당시 제정된 의료 관련법 미정비로 인해 서민에게 효능 높은 전통 민간요법이 점차 사라지게 되니 안타깝다. 단기 연호 사용에 있어서도 이런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국의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때마침 2000년 이후 서기·단기 연호 병기 관련 상황을 살펴봤다. 해당 책까지 내면서 이를 주장하고 있는 고덕원 단기연호연구소장이나 청와대 청원, 개정 법률안 국회제출 심의 보류 같은 활동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시방 이를 다시 주장하는 사유를 약술해본다. 첫째, 헌법 이념에 부합한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으로 시작된다. 이는 곧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 정통성의 발휘라 할진대, 단기 연호 사용은 이의 구체적 실천 방안의 하나랄 수 있다. 단군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나 실존 여부 논란을 넘어 우리 시조라는 상징성이면 족하다. 국민 단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둘째,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셋째, 장래 세계 한류문화 선도 국가로서 자주성을 확보한다. 오늘날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앞으로 동양, 특히 한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재편된다면 민족 자주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넷째, 남북한 공동 사용으로 통일 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그들의 ‘주체’연호를 함께 쓰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본다. 2019년 5월 일본에서는 국왕 양위로 인해 그들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영화) 사용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유대력), 사우디아라비아(이슬람력), 태국(불교력) 등의 국가들이 고유 연호를 서기 연호와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신문의 경우에는 이 기호일보를 비롯해 주요 중앙 일간지들 대부분이 단기 연호를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단국대학교 대학신문이 ‘단기 4354년 2021년 3월 23일’과 같이 두 연호를 병기하고 있다. 

나도 종전처럼 단기만 쓰지 않고, 이번 인문 칼럼집부터 이를 본받아 병기해야겠다. 단기 연호만을 독립적으로 공용화하자는 게 아니다. 국어기본법이 공문서에 한글 외 한자를 병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듯이, 우선 현행 서기 연호에다가 단기 연호 공용 병기를 임의 규정화하자는 것이다. 단시조로 말한다.

- 단기의 꿈 -

이역만리 떠나버린
  피붙이를 그리면서

 

집터만 덩그러니
조국 땅을 지켜온 건

 

행여나
고향 찾아서
돌아올 날 있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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