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제 삶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 말을 들으면 ‘그래야 하나 보다’라고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 말을 접할 때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진실한 사랑을 실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저)에 나오는 다섯 살짜리 소년의 삶이 좋은 예입니다. 

"내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희귀한 중병을 앓는 리자라는 여자아이를 알게 됐다. 리자가 살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은 다섯 살배기 남동생에게서 수혈받는 것이었다. 이 남동생도 누나와 똑같은 병을 앓았지만, 기적적으로 나아서 그 병을 퇴치할 수 있는 항체가 생긴 것이다. 의사는 동생에게 누나에게 피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예. 누나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러겠어요.’

수혈하는 동안, 소년은 누나의 옆 침대에 누워 누나의 뺨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미소도 사라졌다. 소년은 의사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부터 제가 죽기 시작하나요?’ 너무 어린 탓에 소년은 의사의 설명을 잘못 알아듣고 자기 피를 모두 누나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가 소년이었다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어린 나이여서 자신의 피가 모두 누나에게 전해져 누나는 살겠지만, 자신은 죽는다고 믿고 있는 제가 선뜻 누나에게 피를 줄 수 있을까? 소년의 저 큰 용기 앞에 머리를 떨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년의 누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느끼고 감동했을 겁니다. 누나도 살고 자신도 살게 됐으니까요. 

이 글을 접하면서 모든 아픔을 뒤로하고 무작정 산에 들어가 사는 어느 자연인이 던진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또 다른 사연이 이덕규 시인의 시집인 「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에 있습니다.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 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서는 뜻밖에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 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이 글을 접하면서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합실에서 잠을 자는 낯선 청년에게 무언가를 건네다가 봉변당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어른이 선뜻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자신을 ‘버리는’ 사랑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면서 누나를 살리겠다는 어린 소년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는 자연인의 감동이 소년에게도, 누나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오늘 전해드린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지면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저는 머리를 똑바로 들 수가 없습니다. 오가는 길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몰래 오천원권 지폐 한 장조차도 전해준 적이 없는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어야 누군가가 희망의 끈을 다시 쥘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만난 선배님이 취기가 오르자 툭 던진 말씀이 기억납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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