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 영어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 영어과 교수

예술은 자연을 모방(mimesis)하는 일이지만 시대의 담론도 녹아 있다.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다룬 문학작품에도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함의돼 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악인 중의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아고의 심리 세계가 크게 드러나면서도 셰익스피어 시대의 인종차별, 성차별, 베니스라는 사회의 타락상이 얽혀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음을 「오셀로」는 또렷하게 보여준다. 

남성이 여성을 소유물처럼 여기는 남성적 사회에 대한 고발이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전복적 행위에 대해 처벌과 통제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 미국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폭행으로 이어지고 있고, 며칠 전에는 벨기에의 어느 TV방송에서 남녀 사회자가 동양인의 눈을 흉내내는 비하 방송을 해 비난이 쏟아졌다. 아직도 유색인종,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종차별이 쉽게 근절되기 어려워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유대인인 샤일록에 대한 증오가 그 작품의 배경이 됐고, 「오셀로」에서는 얼굴이 검고 입술이 두툼한 무어인 오셀로가 인종차별을 당함으로써 개인의 비극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 있음을 보여준다. 무어라는 말은 그리스어 ‘Maurous(검다)’에서 나왔는데 흑인을 가리킨다. 무어인 오셀로가 베니스의 귀족 브라밴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비밀리에 결혼하는 것은 기존 백인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고, 백인 청년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오셀로의 기수(旗手) 이아고는 자신의 부인과 오셀로가 혹시 섬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는다. 이아고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닙니다. I am not what I am"이라는 말을 내뱉는데,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그는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게는 성경만큼 강력한 증거"로 작동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의심이 확대 지속되면 ‘오셀로 증후군(Othello syndrome)’이 된다. 이런 증상의 심리적 저변에는 상대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이용해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부인 데스데모나가 캐시오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오셀로가 결국 죄 없는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이는 것은 이아고와 오델로가 ‘가스라이팅 gaslighting’(심리학적 조작을 통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여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오셀로의 용맹무쌍함에 반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셀로와 결혼한 데스데모나는 그 시대의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남편을 따라 전쟁터로 간다는 것은 여성이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그 시대의 미덕을 저버리는 행위다. 또한 오셀로는 베니스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주류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격 모독과 사이프러스에서 부관 캐시오가 자신을 제치고 총독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차별과 설움이 아내의 불륜설을 그토록 쉽게 믿도록 만들었는지 모른다. 군인으로서 용감하고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그의 성격이 이아고의 꼬임에 빠졌을 때는 오히려 파멸로 다가가는 촉진제가 된다.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다. 그 시대의 질서와 이데올로기를 파괴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처절한 죽음을 맞는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베니스는 돈이 중심이 돼 돌아가는 국제도시다. 이곳에서 이아고는 로더리고를 꼬여 그의 재산을 갈취하고 이용하다 끝내는 그를 죽여 버린다.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드러나고 있다. 베니스 사회의 비주류로 살아가는 오셀로의 설움, 인종차별, 페미니즘, 도시의 타락,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치적, 심리적 의미들이 「오셀로」 속에는 보석처럼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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