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성 인하대 사학과 교수
임학성 인하대 사학과 교수

한국사에서 18세기는 ‘영·정조 시대’라 특정하기도 한다. 조선 왕조의 제21대 영조(재위 1724~1776)와 제22대 정조(재위 1776~1800) 임금이 재위했던 시대로, 두 임금의 치적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특히 실학자들이 왕성하게 활약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때 활약한 실학자 가운데 한 명이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년 출생~1805년 사망)이다. 청나라의 문물을 견문하고 돌아와 저술한 「열하일기」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한 「양반전」, 「허생전」 등의 소설로 우리에게 그 이름이 친근한 인물이다. 

특히 박지원은 1791년(정조 15) 경상도 안의 고을의 현감에 임명돼 임지로 향하던 중 대구에서 경상감사의 부탁을 받고 4건의 살인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하는 탐정 능력도 발휘했다고 한다. 이런 때문인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 ‘조선명탐정’을 보면서 주인공 역을 맡은 김명민이 마치 박지원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박지원과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그는 서울에서 살면서 본인 소유의 집을 장만하지 못하고 처남이나 사촌동생 집을 빌려 세 들어 살았다. 당시에도 서울 집값은 장난이 아니어서 웬만큼 부를 축적하지 않은 자라면 모를까 양반신분이라도 쉽게 집을 소유하기가 어려웠다. 박지원의 가난함을 알게 된 정조 임금이 "박지원은 평생 조그만 집 한 채도 없이 가난하게 살았다. 이제 늘그막에 고을 수령으로 나갔으니 땅이나 집을 구하는 데 온 정신을 쏟으리라 기대한다"면서 그를 안의현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박지원은 5년간 안의현감 생활을 마치고 1796년에 상경했을 때 집을 장만하지 못하고 제생동(현 계동)에 있는 사촌동생 소유의 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 이 일화는 박지원의 청렴을 드러내는 대목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만큼 서울의 집값이 고가였다는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수도였던 한양, 서울에는 예나 지금이나 땅 면적에 비해 거주 인구가 넘쳐났으니 집값이 폭등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아무래도 수도 서울은 늘 출세를 바라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며 고관대작이 거처하는 곳이었기에 비싼 기와 저택이 즐비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울(한성부)의 기와집 비율이 60%나 됐다고 한다. 박지원과 교유했던 실학자 박제가가 서울에는 기와집이 "물고기 비늘처럼 빽빽이 들어서 있다"고 묘사하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로 조선시대 서울에서는 불법으로 지은 집을 철거하거나, 힘없는 서민의 집을 강제로 빼앗은 권력자의 횡포를 처단하는 문제가 적잖게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관련된 사건 파일을 찾아봤다. 1776년에 영조 임금이 서울의 서민 집을 빼앗았다는 죄로 훈련대장 이장오(李章吾)를 인천 교동도로 보내 충군하게 했다는 기사가 발견된다. 

훈련대장은 무신 중 최고의 권력 자리였는데, 특히 이장오는 전주 이씨 왕가 후손으로 임금을 측근에서 보위하는 금위대장까지 역임한 인물이었다. 그런 권력자가 집이 화근이 돼 섬에서 근무하는 천한 군졸로 지위가 강등됐던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법규를 마련해 각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에 제한을 뒀다. 그렇지만 사람 욕심에 법의 제재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권세를 빙자해 법규의 제한 범위를 넘는 일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분수에 넘치는 호화 주택을 지어 화근이 된 사례도 더러 있었다. 

지난 4월 7일 치러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가장 큰 표심은 현 정부의 주택 정책 실패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투기 비리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아울러 선거 기간 내내 여당 후보들은 야당의 서울과 부산 두 후보가 주택 취득과 부동산 개발에서 온갖 특혜와 비리·불법을 저질렀다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거짓말만 하며 유권자들을 속였다는 점을 쟁점화했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야당 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유권자의 선택지는 야당 후보들의 비리와 거짓을 응징하는 것보다,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응징의 핑계(?)로 삼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는 주택이 화근이 된 셈이다. 집값이 폭등하면 그런다고 아우성, 반대로 폭락하면 또 그런다고 아우성이었다. 주택 정책은 긴 호흡을 갖고 지켜본 다음에 평가하는 게 맞다. 현재의 기형화된 주택 문제가 ‘이명박근혜’ 정권 때 그릇된 정책이 뒤늦게 나타난 결과이듯이 현 정부의 주택 정책 성패는 다음 정부 때 가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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