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1980년대 대박이 터진 영화 ‘고래사냥’이 다음 주에 재개봉된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좋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창호 감독은 "내가 주고 싶은 위안은 당신 안에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있다는 것, 자연 치유력이 있다는 것, 일깨우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소심하고 조금은 덜 떨어진 듯한 병태(김수철 분)는 짝사랑하던 여대생에게 실연당해 절망 속에서 살던 어느 날 고래를 잡겠다며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우연히 걸인으로 살아가는 민우(안성기 분)와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채 윤락가에서 사는 춘자(이미숙 분)를 만나게 됩니다. 민우와 춘자는 가장 밑바닥에서 절망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상징일 겁니다. 

영화는 춘자의 슬픈 삶을 이해한 병태와 민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출해 그녀의 고향 집에 데려다주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춘자를 보면서 병태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고래’는 멀리 떨어진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그 ‘고래’이며, 그 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영화의 포스터에 실린 사진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 세 사람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입니다. 삶의 여정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상징하듯 그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얼룩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소 짓는 모습이 포스터에 실린 이유는 어떤 고통이나 슬픔도 능히 이겨내는 힘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힘은 바로 ‘미소’는 아닐까요? 즐거워서 웃는 웃음보다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웃는 미소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긍정력 사전」(최규상 저)에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점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영국이 남미를 개척할 당시 영국 선교사가 아마존강 하류에 도착해보니, 주민들의 몸이 온통 털로 덮여 있어 도대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구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별법을 알려달라고 본국에 전보를 보냈는데, 본국에서 온 회신이 재미있습니다. "웃는 놈은 인간이고, 웃지 않는 놈은 원숭이다."

미소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도구입니다. 애덤 잭슨은 「책의 힘」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웃음은 행복한 감정을 낳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웃거나 미소를 지을 때 뇌에서는 일종의 행복한 감정을 낳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실제로 웃을 때는 혈액 속에 스트레스를 주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손이 저하돼 근심이나 갈등을 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저자는 이렇게 도움말을 주고 있습니다. "재미가 없다면 ‘재미있는 면은 없을까?’라고 자문해보라. 보통 어떤 일에서나 웃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그 부분을 찾아내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 상황에서 재미가 없다면 다른 것에서 찾아보라. 웃을 수만 있다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마음이 무척 상한 상태로 버스에 올랐는데, 옆 좌석에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저를 보고 씽긋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무거웠던 제 마음이 상당히 진정됐다는 것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미소는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도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미소나 웃음은 슬픔을 이겨내려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치유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소와 웃음에 대한 소재들을 정리한 후에 다시 영화 포스터를 보았더니, 그제야 거지로 살아가는 민우와 실연의 아픔을 잊겠다며 고래를 찾으러 떠난 병태, 그리고 윤락가에서 말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춘자가 포스터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즐거워서 웃는 삶과 웃어서 즐거워지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