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플라타너스는 무던하기도 하다. 교통량 많은 도시의 가로수로 선발돼 넓은 잎사귀로 대기오염을 줄여주지만, 혹독한 가지치기로 몰골이 거듭 처참해져도 묵묵히 자신의 본령을 다한다. 생명력이 모진 걸까? 뭉턱 잘린 줄기에서 간신히 뻗은 잔가지가 서너 해 만에 두꺼워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난 인부들이 가지들을 모조리 베어낸다. 닭다리를 연상케 하는 도시의 플라타너스. 은행나무보다 대기오염 정화 능력이 빼어나다며 잎사귀 펼칠 기회를 차단한다. 저럴 거면 왜 심었나?

금단의 지역이던 부평 캠프마켓을 얼마 전 다녀왔다. 몇 걸음 들자마자 눈에 띄는 플라타너스 두 그루는 장엄했다. 드문드문 찾는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보존을 당부한다는데, 자태가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리라. 처참한 몰골에 익숙한 시민들은 방해 없이 자란 나무의 경탄할 만한 진가를 확인했을지 모른다.

독일 비스바덴시의 빌헬름 스트라세는 두 줄로 심고 가꾼 플라타너스 가로수로 유명하다. 가지치기하지 않은 게 아니다. 가지를 좌우로 정돈해 가로수 터널을 만들자, 보행자는 물론이고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차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면서 대기를 정화한다. 근처 공원과 연계해 자부심 가질 가로공원이 됐다. 비스바덴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청주는 어떤가. 고속도로에서 들어설 때 방문객의 눈을 시원하게 하는 가로수는 청주 자랑거리의 하나다.

가혹한 가지치기를 견디는 플라타너스가 간판을 가리고 비에 젖은 낙엽은 보행을 다소 귀찮게 하지만, 잎사귀 넓은 플라타너스는 가로수의 본령을 어떤 나무보다 훌륭하게 해낸다. 대기오염을 완화하고 소음을 차단하며 여름철 뙤약볕을 막아주기에 천박한 민원이 빗발치더라도 시 담당자들이 플라타너스를 포기하지 못할 텐데, 잘 가꾸면 어떤 가로수보다 멋진 경관을 선사한다. 비스바덴이나 청주의 시민들이 가치를 인식하며 보호에 나섰기에 지역을 넘어 전국, 아니 세계적 자랑거리로 보전했다. 부평 캠프마켓은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나뭇가지가 한쪽으로 치우쳐 부러질 위험이 있다면 가지치기는 필요할 것이다. 닭발 가로수에 마음 상한 시민들은 무자비한 가지치기의 이유가 궁금하다. 필요하다면 봄철 새잎이 펼쳐지기 전에 25% 범위 이내에서 잘라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는 "나무의 품위와 아름다움, 그리고 면역력을 고려할 것"을 당부한다. 안타깝게 현실은 원칙을 외면한다. 효율과 비용부터 생각하는 지자체는 위탁업계에 맡기고, 이윤부터 생각하는 업계는 잎사귀 한 잎 허용치 않는 닭다리를 연출한다. 시민은 한동안 기후변화로 뜨거워지는 거리를 진저리치며 걸어야 한다.

지자체는 예산 타령 뒤에 숨지만, 정녕 예산이 부족할까? 타성에 젖었거나 관심이 부족하겠지. 엉뚱하게 낭비되는 예산 일부를 지원해도 닭발 가로수는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인천시의 여기저기 닭발처럼 보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바뀔 수 있다. 시민들이 보호에 나선다면 우리나라 청주와 독일 비스바덴처럼 인천도 자랑스러운 가로수 공원이 조성될 수 있다.

전깃줄이 지하로 들어간 도시에서 시민들은 간판으로 상점을 찾지 않는다. 맛이나 신용에 이끌린다. 상점 앞에 멋진 가로수 공원이 조성되었다면 시민들은 모인다. 코로나19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찾을 텐데, 다행일까? 도시 경관과 환경을 정화하는 가로수를 보전하자며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가 최근 활동을 시작했다. 시민의 관심이 지자체 관심으로 이어져, 대기오염이 심각한 인천시도 세계에 자랑할 플라타너스 가로공원을 번듯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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