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
한재웅 변호사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손으로 스스로 민주화를 이뤄 낸 빛나는 역사를 자랑한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독재 권력에 맞선 국민적 저항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필리핀·태국·중국·베트남 등 다른 동아시아 민주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고, 그 점을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역할과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분연히 거리로 나갔던 광주시민과 불행히 군부의 총탄에 희생된 시민들을 생각하면 깊은 경외심과 안타까운 심정이 자랑스러운 감정보다 먼저 찾아온다. 당시 군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전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광주로 가는 길을 봉쇄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완전히 고립시켰다. 다른 국민들은 당시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광주시민들만 가혹한 군부의 폭력에 맞서야 했다. 김남주 시인의 말처럼 오월은 바람처럼 서정적으로 온 것 아니라 피 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왔다. 광주정신은 민주화운동의 기둥으로 다시 살아나 우리 현대사의 영광의 승리와 함께 했으나 민주화가 성공하기 전까지 광주정신은 승리와 영광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한(恨) 맺힌 함성이었다. 

현지시간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미얀마 시민들의 치열한 저항이 전개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발포와 고문을 자행하며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미 많은 미얀마인들이 희생을 당했지만 쿠데타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저항은 위축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자신들의 만행이 세계의 이목을 끌지 않게 하기 위해 언론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SNS 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4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가슴 아프고 처절한 국민의 저항이 미얀마에서 반복되고 있다. 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 국민들의 평화적인 저항에 군부의 실탄 발포가 더 심한 반발을 촉발한 점, 국민들의 저항을 고립시키려고 한다는 점 등 많은 부분에서 광주와 미얀마가 닮아 있다. 군부의 폭력의 정도와 예상되는 희생자를 고려하면 현재 미얀마 국민들은 어쩌면 과거의 광주시민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지 모르다. 

일각에서는 쿠데타 배경에 미·중 패권 경쟁이 있으며, 쿠데타 이전 미얀마 정부도 로힝야족 사건에서 많은 잘못이 있다고 하면서 이번 사건에 신중한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정부를 총칼로 무너뜨리고 반항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이번 쿠데타는 국회의원 의석 수 4분의 1을 무조건 배정받는 등 비정상적으로 유지하던 막강한 군부의 기득권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해 비롯된 것으로 명분상 정당성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얀마 민주화 세력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롤모델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분명 광주의 역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광주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민주화를 이뤄 낸 것처럼 지금의 미얀마 국민들도 민주주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 사석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 40년 전 광주시민들의 한 맺힌 절규가 미얀마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의 승리를 믿고 의심치 않으나 군부의 총탄이 선량한 미얀마 국민을 피해 날아가 부디 너무 많은 희생이 뒤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미얀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응원해 미얀마 국민들이 고립되지 않게 도와주는 것으로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미얀마 국민들을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한다. 어제 우리의 광주가 오늘의 미얀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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