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 성남시장
은수미 성남시장

"시장 아줌마는 제페토 아세요?" 얼마 전 집무실에 방문한 아이들 중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럼 알지요. 아줌마는 게임의 메카 성남의 시장이란다. 성남에도 곧 제페토처럼 재밌고, 환상적인 메타버스 세상을 만들어 줄게요."

메타버스 산업에선 탄탄한 스토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하고 강화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행정도 비슷하다. 필자는 성남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행정에 접목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필자는 마블의 광팬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블의 광범위한 세계관을 좋아한다. 보통 ‘어벤져스’로 대표되지만 마블에는 약 300여 개의 유니버스(세계관)가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 전 읽은 김소영 작가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아이든 어른이든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개체이고 소우주다. 현재 성남에는 13만7천224명(18세 미만)의 어린이가 있으니 성남시 안에는 적어도 13만7천224개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그 넓고 창의적인 세상 안에서 아이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어떠한 존재도 될 수 있다.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한 명의 독립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덜 자라나고 부족한 상태인, 그저 양육과 훈육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만연하다. 아동학대는 이와 같은 인식에 기반하는데, 앞서 언급한 책에서 어린이날과 관련해 반드시 이루고 싶은 저자의 소원은 바로 "어린이 여러분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을 금지하는 것. 

그렇다.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1천389건, 이 중 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3만45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아동학대에 의한 사망도 42명에 이른다. 이에 성남시는 작년 6월 아동학대 원인과 현황 파악을 위해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하고, 10월에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4명을 배치해 현장 조사부터 사례 판단은 물론, 피해 아동 보호까지 적극 대처하고 있다. 

현재까지 294건의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 조사해 169건이 학대로 인정됐고, 현재 59건이 조사 중이다. 학대로 인정된 건에 대해선 신속하게 분리 조치하고, 재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개선 프로그램과 아동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이 재결합할 수 있도록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예방을 위해 아동학대 신고 핫라인 개설, 아동학대 수시 점검단 운영, 어린이집 CCTV 사각지대 추가 설치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민간부문에서 주도하던 아동학대를 공공에서 전담한다는 것은 커다란 진전임에 틀림없지만, 시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아직 벅찬 것도 사실이다. 인력부족 등 현장 대응인력의 근무 여건과 왜 남의 가정사에 간섭하냐는 식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일선 담당 직원들이 겪는 물리적 위협 등 앞으로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 산적하다. 

특히 아동학대 업무를 보는 직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6개월 동안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으로 근무한 직원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직을 변경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시는 오는 7월에 아동학대 전담팀을 신설하고, 전담인력을 단계적으로 15명까지 보충함과 동시에 심리상담 등도 지원해 나갈 예정이지만 아동학대 업무가 공공부문에 온전히 정착되려면 상당 세월이 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선 지자체들의 치열한 노력과 함께 국회 차원의 아동학대특별법 제정과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본인이 사랑받고 존중받으면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반대로 본인이 사랑받고 존중받지 못하면 타인에 대한 그런 배려도 없다. 

앞서 강조했듯이 아이들의 몸이 성인의 반만하다고 존재가 반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아이들이 존엄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성남은 단 한 사람의 아이도 빠짐없이 존엄한 인격체로 온전히 존중받는 그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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