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사회 환원 계획에 따라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2만3천여 점의 개인 소장 미술품과 문화재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 이중섭의 그림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명성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원본으로 접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에 기증된 이중섭의 작품은 무려 104점으로 엽서화, 은지화와 함께 대표작인 ‘황소’와 ‘흰소’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내년 3월 ‘이중섭 특별전’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이중섭의 아내’는 이중섭의 세계관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과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화가 이중섭은 1956년 서울의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쓸쓸히 사망한다. 정신병과 영양결핍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사무치게 그리워한 아내 곁에 한 줌의 재가 돼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41세였다. 평안도에서 부유하게 성장한 이중섭은 1936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1941년 운명의 여인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난다.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북한 원산에서 예식을 올린다. 두 아들을 낳고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던 시절은 한국전쟁과 함께 막을 내린다. 흥남 철수로 북에서 부산으로, 다시 제주로 피난하는 동안에도 가족은 늘 함께 했지만 지독한 궁핍은 아내와 아이를 병들게 했다. 결국 1951년 남편은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먼저 보낸다. 그 누구도 이별의 시간이 그토록 길 줄은 몰랐다. 이후 부부는 이중섭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55년, 1주일간 함께 한 것이 마지막이 됐다.

영화는 아흔을 넘긴 이중섭의 아내 ‘남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남쪽에서 만난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남덕은 남편이 마사코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부부의 사랑과 시대적 아픔은 남편이 보낸 200여 통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고령이 된 아내는 편지를 읽으며 당시를 추억하는데, 영화는 노인이 더듬더듬 느리게 읽는 그 말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한 드라마도, 극적인 장치도 없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품은 사랑과 그리움을 진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가족과 함께 한 아름다운 시절이 투영된 소재인 꽂게, 어린이, 가족의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맑고 동화적인 예술혼을 불태운 천재 화가의 삶 이면에 가족을 향한 한없는 사랑과 애틋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야 했던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 이중섭. 다큐멘터리 ‘이중섭의 아내’는 남덕의 목소리를 통해 이를 잔잔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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