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구 인천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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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거실 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리모컨을 옆에 두고 두 손으로는 말린 빨래들을 연신 개면서 말이다. 가끔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타서 그 옆에 갖다 놓으면 아내의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이런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될까 말까 하다. 외손녀 돌보랴, 성치 않은 친정어머니 모시고 병원 다니랴 바쁜 아내는 일주일간 빨랫감을 쌓아 뒀다가 한꺼번에 세탁한다. 그리고 말린 다음 잘 접어 개어서 양말은 양말대로 팬티는 팬티대로 옷가지들을 분류해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것들을 냉큼 안아들고 안방 서랍장 속에 종류별로 집어넣는다. 아내는 차곡차곡 개 놓으랴, 텔레비전 보랴, 커피 마시랴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세탁기 뚜껑을 열어보기도 하고 베란다 빨래 건조대 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 팬티 하나가 안 보인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입고 있는 팬티가 아들 것이란 말인가? 얼룩덜룩하면서 허리는 꽉 조이고 야들야들한 것이 입은 듯 안 입은 듯 가벼운 팬티가 아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 팬티 아버지가 입었다. 입고 나서 벗어줄게" "아버지, 남이 입던 팬티를 어떻게 입어요, 아버지나 입으세요." 아내가 잘못 분류해 놓은 것을 그만 아들 팬티를 내 팬티인 줄 알고 무심코 입은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하루 입은 것인데 남이 입었던 것이라 안 입겠다고… 그 소리를 듣고 나니 갑자기 아버지 팬티 생각이 났다. 

지금 아들 나이쯤 됐을 때 우연찮게 아버지 팬티를 입은 적이 있다. 90년대 후반까지 같은 인천이라도 멀찍이 떨어진 ‘고잔동’에서 아들들 전부 세간 내보내고 아버지 혼자 농사를 짓고 계셨다. 형제들이 겨우 아버지를 돕는 것이라고는 모내기 한철 못줄을 잡거나 동네 일꾼들 틈에 끼어 모내기를 거드는 일이다. 

어느 해인가 여름에 모를 낼 때도 오형제들이 다 모이긴 했다. 모를 내러 왔으면 미리 집에서 채비를 하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다들 놀러 나온 사람들처럼 빈손으로 와 아버지의 밀짚모자며 장화, 허름한 옷들을 전부 입고 나서는 바람에 정작 나는 팬티만 가리는 핫바지 하나만 걸치고 논에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모내면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진흙 속에 빠지고 흙탕물에 팬티까지 흠뻑 젖어 그냥 입고 갈 수가 없게 됐다. 난감해 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 장롱 속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그 중 상태가 좋은 아버지 팬티를 골라 주셨다. 몇 년은 실히 입으셨을 흰 면 팬티였다. 앞뒤 가운데는 누렇게 바랬으며 하늘이 보일 정도의 날름날름한 팬티였다. 고무줄도 늘어져 엉덩이에 겨우 걸치는 팬티였으나 입는 순간 아버지의 살결이 와 닿는 것처럼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아버지의 체온을 느껴 본다는 것이 얼마만인가? 그동안 자라 오면서 아버지와 살갗을 맞대며 지낸다는 것은 언감생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자식과 함께 목욕탕에 자주 가서 서로 몸 부대끼며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을 때인가, 내남없이 궁핍한 시절에 아버지, 어머니 손목 잡고 자주 놀러 다니기를 해봤나, 부자지간에 살갑게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흔치 않았다.

그런 아버지와 자주 살갗을 맞댄 것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였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말년에는 거동이 불편해 목욕탕에 자주 모시고 다녔다. 목욕탕에 들어가 옷을 벗겨 드린 다음 맨 마지막으로 팬티를 벗겨 드렸을 때 건장하시던 신체는 앙상한 삭정이처럼 변해 있었으나 팬티는 내가 30여 년 전에 입어 봤던 그 팬티나 다름없었다. 

아버지의 그 팬티를 몇 년 동안이나 입었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입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했다. 징크스라는 걸 잘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남과의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출장을 갈 때, 인사발령이 있는 날에도 입고 출근하면 일이 잘 풀릴 때가 많았다. 부적처럼 입고 다니던 아버지 팬티가 없어져 아쉽기 그지없다. 

나는 오늘도 아들의 가볍고 부드러운 기능성 팬티를 입고 다닌다. 혹시나 아버지의 빛바랜 누런 팬티를 입고 다닐 때 느꼈던 아버지의 숨결과 따뜻한 체온을 아들의 팬티에서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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