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
108분 /범죄 / 15세 이상 관람가
 
땅 아래 묻힌 파이프라인을 타고 흐르는 기름을 훔치기 위해 도유꾼 여섯 명이 모였다. 영화 ‘파이프라인’은 국가가 관리하는 송유관을 통해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 범죄를 다룬다. 도유 사건이 한국 영화의 주된 소재로 다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에 석유를 수송하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업계 최고의 천공 기술자 ‘핀돌이’(서인국 분)는 수천억L에 달하는 기름을 빼돌리려는 정유 사업가 ‘건우’(이수혁)가 짠 거대한 판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핀돌이를 보조하기 위해 모인 멤버들은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어딘가 모자라 보일 정도로 순박한 괴력의 인간 굴착기 ‘큰삽’(태항호)과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땅속 지리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지만 큰 병을 앓고 있는 ‘나과장’(유승목)은 짠내를 폴폴 풍긴다.

구멍 난 송유관에 새로운 관을 연결해 기름이 흘러가는 길을 돌리는 용접공 ‘접새’(음문석)는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경찰이 들이닥치는 비상상황을 감시하고 알리는 ‘카운터’(배다빈)는 까칠하다. 여기에 도유꾼들을 잡겠다고 혈안이 돼 있지만 허술한 순경 만식(배유람)까지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작업은 전라도, 경상도로 석유를 보내는 호남선과 경부선 두 개의 송유관이 마주한 지역에 있는 한 허름한 관광호텔에서 벌어진다.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이 스케일 큰 범죄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삽과 곡괭이, 드릴 등 장비는 투박하고 시간 내 땅굴을 파는 것 외에 현란한 작전은 없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빌런(악당)도 등장시킨다. 돈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우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핀돌이를 압박한다. 수세에 몰린 도유꾼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물리적 힘이나 수에서나 열세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파이프라인’은 유하 감독이 시도한 첫 범죄오락물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등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유 감독도 "이름을 가리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우울증이 많이 호전될 정도로 유쾌했다는 유 감독은 "나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며 "도둑들이 어떻게 기발하게 기름을 빼돌리는가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는 아니다. 생면부지의 도둑들이 어떻게 서로 마음을 열고 한 팀이 돼서 더 큰 악을 때려잡는 팀플레이에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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