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후변화와 그 대응은 에너지·환경·경제를 관통하는 국가적, 국제적 이념 또는 가치가 됐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응과 기후변화를 받아들이는 적응이라는 두 가지 논의가 있다. 기후변화라는 원인을 해소할 것이냐 아니면 기후변화에 따르는 위험을 최소화할 것이냐의 차이가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적응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대응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기후변화 관련 법안들을 보더라도 대부분 기후변화 대응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이소영 의원 등 46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 사회이행 기본법안은 기후변화 문제가 인류 생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경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기후위기에 따른 지구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이 중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가 경쟁력 확보에 관한 부분은 미사여구에 가깝다는 점에 있다. 기후 관련 법안들이 이렇게 편향적인 이유는 기후위기만 강조하고 호주 등 많은 국가들이 중심을 두고 있는 기후변화 적응을 외면하기 때문이고, 기후위기라는 환경적 측면 외에 에너지·장기적 국가 경쟁력 등 현실적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우려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자신 있게 기후변화 대응을 외치고, 미국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것은 충분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미 저에너지 소비 구조의 서비스 산업 국가로 전환됐고 신재생 에너지 역량도 풍부하다. 그리고 자체 생산되는 화석연료를 포함한 에너지원과 러시아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언제든 들여올 수 있는 수입 루트와 자유로운 에너지 역내 시장이 형성돼 있다. 비전통자원은 물론이고 광활한 대지를 소유한 미국은 에너지와 환경 문제로부터 언제나 자유롭고 당당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국내 화석연료 자원은 거의 없고, 신재생 에너지 역량도 부족하다. 여기에 동북아시아 역내 에너지 시장 구축은 말만 무성할 뿐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 산업구조 또한 중공업·석유화학 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에너지 저소비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의 먹거리와 일자리인 산업들을 기후위기의 주범이니 해외로 이전하라는 무지몽매한 주장도 들어보기는 했다. 기후변화만 눈에 보이고 일자리와 국가 경쟁력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무시한다면 가능한 주장이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기후위기 문제를 떠나 우리나라는 경제위기로 곧 망할 것이다. 지난해, 법제연구원과 다른 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2019년 11월 제정된 독일 연방의 기후보호법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환경론자들은 독일 연방이 기후보호법을 제정했으니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기후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일의 기후보호법을 살펴보면 의외로 다른 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기후보호법 입법 이유서는 2020년 기후변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독일은 2005년 대비 2020년까지 14%, 2030년까지 38%까지 감축하기로 했으나, 2017년까지 겨우 3% 감축했다. 또한, 독일이 곧바로 석탄발전을 모두 폐지하는 것 같지만 계획된 최종 폐지는 2038년이다. 석탄발전 폐지에 따른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보상이나 지원을 위해 550억 유로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힌다. 우리 돈으로 약 75조 원이다. 

답답한 것은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어떤 법을 제정하면 그 사실만 강조할 뿐, 이면의 다른 상황이나 경제와 일자리를 위해 충분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기후위기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국가 경쟁력·에너지 안보 등 다른 문제점들도 알 권리가 있다. 독일 기후보호법에서 가장 띄었던 것은 이 법이 국가·지방자치단체 등 공적 주제에만 적용될 뿐, 민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우리 법안들은 국민들까지 책임 주제화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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