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방송계에서 은퇴한 선배 주위에는 늘 후배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선배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고 편안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선배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답을 선배의 말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펴는 후배에게 선배는 늘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한번 해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며 팔짱을 끼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전적으로 그를 믿고 기꺼이 협조하겠다는 마음을 지닌 호기심 많은 사람입니다. 선배는 후자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니 후배들이 따를 수밖에요. 

이런 태도를 지녀서인지 선배는 이야기할 때나 웃을 때는 해맑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안도현 저)에서 저자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른이란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존재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 속에 그걸 막무가내로 우겨넣는 존재다."

"눈사람은 말한다. ‘햇빛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른들이야. 어른들은 눈사람을 만들 줄도 몰라. 그들은 눈사람을 발로 찰 줄만 알 뿐이야.’ 아이들이란 어른을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걸 빼고는 내세울 게 없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진실을 깨닫는다. 어른은 명함을 만들어 돌리고,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지나면 명찰을 떼어 버린다."

어린아이 같은 선배는 저자가 말하는 ‘아이’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그래서 늘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경청하며 연신 감탄하곤 했습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의 생각은 무모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생각은 곧잘 무시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른들의 세계만이 존재했다면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변화와 창조는 기존 생각이나 형식이 파괴돼야만 가능합니다. 기존 생각을 고집하는 한 호기심은 사라져 버립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어른이 막는 이유는 ‘안전’ 때문일 겁니다. 호기심은 늘 위험을 동반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호기심을 짓눌러버리면 변화와 창조도 사라져 버립니다.

호기심을 채우려고 행동하는 아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통해 ‘배움’을 얻고 성장의 동력을 확보합니다. 또한 작은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성장과 발전의 핵심입니다.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때 당신에게 힘을 주는 책」(장 바이란 저)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과학자들은 꿀벌을 뚜껑이 없는 병에 넣고, 바닥에 빛을 쏘인 뒤 행동을 관찰한 결과, 꿀벌들은 단 한 마리도 병 밖으로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꿀벌은 빛이 가장 밝은 곳이 출구라고 여겨 계속 바닥을 향해서만 몸을 부딪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두워 보이는 뻥 뚫린 병의 입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채 사력을 다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다 죽음을 맞이한 겁니다.

요즘 30대 중반의 청년이 거대정당의 대표가 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큽니다. 한편에서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만을 ‘옳다’고 여기면 변화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마치 꿀벌의 죽음처럼 말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선배님의 매력적인 말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한번 해봐!"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아 거칠고 위험해 보이는 그 길을 가겠다는 그의 행보를 호기심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믿어주는 기성세대의 너그러운 수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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