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누구에게나, 힙지로(힙한 을지로의 준말)로 알려지고 생맥주와 노가리의 성지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뿌리이며 시초! 대한민국 최초 생맥줏집! 서울 도심에 교통이 편하고, 주머니 사정도 고려한 가성비 좋은 골목상권. 낮의 철공소 거리에서 밤의 가성비 좋은 생맥주의 골목, 이 집 저 집 노가리. 낭만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곳에 지난해에 이어 올 3월, 최초의 생맥줏집에 강제철거 시도가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인정한 백년가게이면서 서울시에서 인정한 서울 미래유산, 오래된 을지로의 최초 노가리와 생맥주, 대를 이어서 단골을 맞이하는 연탄에서 구워내는 노가리 안주의 성지, 을지OB 베어. 3월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시민단체, 인근 상인들과 몸싸움으로 강제철거가 무산됐지만 언제 다시 세 번째 강제집행이 시도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론 매체에 소개됐다(2021.4. 방영 PD수첩 외 참고).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을 평가해서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 백년가게를 지정하고 있다. 백년가게로 인증되면 정부에서 100년 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성장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홍보 마케팅 및 컨설팅 등 다양한 혜택을 지원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을지로 백년가게의 명도소송과 강제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백년가게로 지정만 해 놓고 그 다음, 육성하거나 존속과 성장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을 행사한 건물주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진행 과정이 합리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장사를 잘해 상가 및 상권의 가치를 높이고 임대료를 제때 내는 임차인을 굳이 쫓아내지 않는다. 을지로 백년가게 강제 철거에는 을지 OB베어가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을지로에서 쫓겨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차상으로도 그렇고, 을지로의 미래 가치라는 측면에서도 득(得)보다는 실(失)이 크기 때문이다. 

철공소 모습을 찾는 사진작가, 문화를 설계하는 청년예술가, 도시계획을 기획하는 건축가와 문화활동가까지 다양한 계층이 생맥주와 노가리, 골뱅이 안주로 하나 되는 레트로 골목. 걷고·보고· 사진 찍고·그려 보고, 야간 고궁을 구경하고 저녁 겸 한잔하는 장소, 멋진 골목길 상권 힙지로의 백년가게. 건물주와 세입자의 입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가(중소기업벤처부)와 지자체(서울시와 해당구청)는 누구의 편에서 중재를 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지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약자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 복지이고 정의가 아닐까?

건물주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세입자 입장은 생존권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다(2020년 23만 개의 소상공인이 폐업을 하거나, 먹고사는 터전을 잃는다는 통계). 경리단길과 가로수길이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이태원 상권이 이사 및 폐점으로 매력을 잃어 공실이 늘고 상권이 죽어가는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더 나아가 시장 논리와 문화 생태계의 상생 문제로 번지는 과정에서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은 자본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문화생태계의 기초가 사라진 뒤에도 과연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보장된 건물주 권리의 당연한 행사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조화를 이끌어내는 몫은 오롯이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계획되지 않고 오랜 시간 어우러진 상권과 문화는 역사의 흔적들이 덧대어진 기억으로 우리에게 감성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백년가게를 지키는 것이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이다. 오래된 가치가 문화유산 도시의 역사가 된다. 건물주 입장을 백번 이해하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상생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 딴짓하는 것은 정말 나쁜 짓거리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