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구한 것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다. 길고 긴 임진왜란에서 조국을 위해 스스로 일어난 의병,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핍박에 대항한 동학운동의 농민들, 식민통치에 항거해 남녀노소 모두 참여한 3·1운동, 한국전쟁 시 국가를 위해 용감히 싸운 군인들. 그리고 2021년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위험 속에서 한국이 방역 모범국이 될 수 있는 기저에는 전 국민의 적극적인 방역수칙 동참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중심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인 국민이 있었다. 영화 ‘1987’은 군사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보여 준 6월 항쟁의 뜨거운 순간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 승리의 중심에도 보통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는 1987년 실재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만큼  등장인물 또한 대부분 실존했던 사람들로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던 대학생 박종철 군이 정신을 잃는다. 의사 오연상이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해 보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은 증거인멸을 위해 사망 8시간 만에 화장을 지시하지만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최환은 부검을 고집한다. 그 사이 ‘경찰 조사 받던 언어학과 서울대생 사망’이라는 기사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인다. 사태 해결을 위해 박처원은 기자회견장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취재 열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윤상삼 기자는 의사를 통해 물고문 사실을 알아낸다. 이후 죽음의 원인이 보도되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집회는 더욱 치열해진다. 한편, 사망사건으로 공안경찰 2명이 구속되고 이후 경찰을 면회 온 가족과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동석한 교도소 보안계장은 사건 가담 인원이 축소됐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교도관을 통해 밖으로 전달되고,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쪽지를 전달받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공개한다. 박종철 군을 추모하고 정권을 규탄하는 대학생 시위 도중 스물한 살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피흘려 쓰러지는 모습이 전국에 알려지고 여론은 더욱 뜨겁게 들끓는다. 그렇게 1987년 6월 10일, 시청 앞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은 민주화를 염원하며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다. 

대학생 박종철 군으로 시작해 이한열 군으로 끝나는 영화 ‘1987’은 6월 광장의 물결을 만들어 낸 시대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그 뜨거운 함성의 시작은 제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 보통 사람들로, 부검을 고집한 검사와 침묵하지 않은 의사의 양심, 사실을 알리고자 한 교도관들의 용기, 진실을 쫓는 기자의 신념과 맞물려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냈다. 

영화는 특정 인물 한 사람을 부각하기보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포착한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중심에는 특정 단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뤄 낸 성취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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