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 문학동네 / 1만2천150원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사람이 있다. 한때 상투적인 것처럼 들렸던 ‘학문에의 매진’이 이즈음엔 매우 드문 일이 돼 버렸지만 그만큼 더 귀하게 들린다. 독문학자 전영애는 그런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전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여성이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부터 학문을 파고들어 마침내 국내 학계에 독문학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시골의사」 등 시대를 풍미한 고전들의 빼어난 번역이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들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돼 독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졌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가 번역한 책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권의 책’으로 꼽곤 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책을 번역해 왔지만 전영애에게 학문의 시작이자 종착지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그가 2011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수상한 ‘괴테 금메달(Goldene Goethe-Medalle)’은 아시아의 학자로서, 여성으로서 이뤄 낸 놀라운 업적이다.

 2015년 문학동네에서 펴낸 「시인의 집」을 통해 여러 시인들과 작가들을 향해 걷는 마음의 기록을 전한 바 있는 전영애는 이번 책에서 다시 괴테로 돌아가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동시집」 등 거대한 작품들에 담긴 아름답고 시적인 격언들을 통해 고단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책이 ‘지식의 보고’로 전해지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시대다. 그러나 전영애는 아직도 일부러 무거운 책을 쌓아 놓고 한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한다. 괴테가 60년 동안 쓴 「파우스트」를 그는 45년을 두고 읽었다.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나중에는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 뒀다. 천천히 번역까지 해 가며 읽은 책 한 권, 한 권이 그에게는 매번 하나의 세계였다.

 전영애는 "세상 무엇이든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의 종말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먼 옛날의 위인으로서 괴테보다 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열렬히 사랑하며 ‘해처럼 맑게’ 살았던 친숙한 한 사람과 마주앉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 문학동네 / 1만2천600원
 

완숙하고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 윤성희의 여섯 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이 출간됐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섯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한 권의 중편소설을 출간하며 기복 없이 고른 작품활동을 이어온 그이지만 2016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쓰인 열한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그전과는 또 다른 오라를 내뿜으며 윤성희 소설세계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단편소설의 마에스트로’라는 수식을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특히 ‘훔친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할머니’라는 인상적인 인물을 그려내어 "홀린 듯 읽으며 경험하는 이 놀라움은 윤성희를 읽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라는 평과 함께 2019 김승옥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어느 밤’을 포함해 그간 한국문학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노년 여성’의 삶을 다각도로 묘사해 냈다. 

 문학평론가 이지은은 "윤성희의 소설과 견줄 수 있는 소설은 윤성희의 소설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녕은 "이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넘겨받기 적당한 온도로 갈무리해 글로 옮겨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라고 호평했다. 이런 작품들이 한데 모인 이번 소설집은 한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처럼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네받는 듯한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이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1만5천300원
 
이 책은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러시아에 있는 28개 건축물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의 역사를 살펴본다. 로마시대부터 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의 전쟁사를 아우르면서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 대비용 성이나 요새까지 두루 소개하며 건축물에 얽힌 전쟁 이야기를 들려 준다.

 건축물만큼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대상도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쉽게 찬양하지만 여기에 숨겨진 뒷이야기, 특히 인류의 역사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전쟁의 역사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쓰였든 그렇지 않았든 지은 지 오래된 건축물엔 어느 한 구석에라도 전쟁의 흔적이 새겨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세계사를 비롯해 전쟁사와 건축사를 각각 다룬 책은 적지 않지만, 전쟁과 건축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살펴보는 책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침묵하지만 ‘전쟁의 생존자’나 다름없는 건축은 마치 한 생명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전쟁은 잊히는 반면 건축물은 부서지고 깨어져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지난한 전쟁의 역사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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