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남의 어떤 행동을 비난하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물론 저도 그런 적이 많았습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그런 비난은 자기 안에도 그런 심리가 숨어 있어서 그런 점을 탓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였습니다. 두 살 위 형과 밥을 먹는데, 형이 식사를 빨리 마치자, "형, 설거지하기 싫어서 빨리 먹은 거지?"라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형은 "이놈이? 네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라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그때는 억울해했지만, 세월이 지나자 그게 사실임을 알게 됐습니다. 

식사를 늦게 마친 사람이 설거지를 해야 했거든요. 설거지하기가 싫었던 저는 속마음을 숨긴 채 형에게 따졌던 겁니다.「언어의 온도(이기주 저)」에 이와 비슷한 예화가 나옵니다. "기차 안에서 한 사람이 큰소리로 통화하고 있다. 가만히 들으니 ‘그 친구는 남을 배려할 줄 몰라’라는 것이다. 그는 통화 막바지에 폭발적인 고음을 자랑하는 가수가 노래하듯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난 말이지 똑같은 말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이야. 난 말이지 똑같은 말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이야!’ 

웃긴다. ‘똑같은 말 되풀이하지 않아!’라는 말을 되풀이하니까. 어쩌면 그 사내의 상황을 모르는 내가 그를 비난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승객으로 가득 찬 차 안에서 전화로 배려하지 않는 후배를 큰소리로 꾸짖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승객들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그 사람!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되풀이하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이 곧 ‘나’는 아니었을까? 설거지하기가 싫어 식사를 빨리 마친 형을 비난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최운규 저)」에서 저자는 "옛날에는 가축의 주인을 구별하기 위해 등에 낙인을 찍어둔다. 잠잘 때 생긴 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지만, 낙인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사람들은 별명이라는 낙인을 갖고 산다고.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 노력하게 되는데, 이를 ‘낙인효과’라고 한다고. 그래서 별명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고"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별명이라는 낙인이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제게 "너는 무엇 하나 끝까지 하는 게 없구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저는 나이가 들어선 저도 모르게 ‘그냥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면 어김없이 그 말씀이 떠오르곤 했으니까요.

낙인효과! 세상으로부터 부여되는 별명이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두고 ‘그는 ~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낙인을 붙이는 일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욕 자판기가 있다. 누구는 누르기만 하면 욕이 나온다. 누구는 여자 이야기만 나온다. 누구는 돈 얘기만 나온다. 누구는 연예인 이야기만 나온다. 누구는 스포츠 얘기만 나온다."

조용히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그 사람을 꼭 비난해야만 했는가?" "너는 어떤 말이 나오는 자판기인가?"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늘 비난의 말을 쏟아냈던 저였습니다. 쉽게 "정치인은 다 저래!"라고 단정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제 기준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며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저 혼자 정의로운 척하며 살았습니다. 최원영이라는 자판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비난의 말만 나온다면 사람들이 다시는 찾지 않을 텐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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