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지난달 24일 미국 상원이 9천530억 달러(약 1천8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에 잠정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종 합의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도로 건설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에 1조 달러 이상의 돈을 투자하는데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이로써 연 초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5조1천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4조 달러, 우리 돈 약 4천540조 원이 경기부양을 위해 쓰이게 됐다. 그야말로 초대형 경기부양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즈음에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이렇게 많은 돈은 어디에서 조달되는 것일까?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거나, 국가가 채권을 발행해서 빚을 내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1%인 법인세를 28%로 올리자고 제안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까? 미국의 달러는 국제 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6%(2014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시장에서 중심이 되는 기축통화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적은 비용(잉크, 종이 값 등)으로 달러를 찍어 그보다 많은 외국상품을 수입해서 쓸 수 있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세금과 빚만으로 모자란 돈은 새로운 화폐 발행을 통해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은 무작정 달러를 찍어 쓸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이래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많은 돈을 경기부양에 쏟아 붓고 있다. 이미 풀린 돈을 볼 때 인플레이션에 대해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이 첫 번째 수단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존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다는 증거만 보이면, 시장에서 달러를 걷어 들이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시장에 많은 돈이 풀렸고, 더 많은 돈이 풀릴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경고하고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다. 왜 미국은 기존의 통화정책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정부가 현금을 발행하고 수도꼭지를 열어 정부 지출과 차입금 이자를 민간으로 흘려보내면 이를 통해 공공재가 창출된다. 이로 인해 민간에 현금이 넘쳐 물가 상승 조짐이 보이면 배수관을 열어 세금으로 거둬들이거나 정부 차입(국채 발행)을 통해 국채 계정으로 옮긴다’ 고 주장한다. 또한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 물가상승을 부를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놀리고 있는 설비와 실업이 있을 때 재정 지출로 이를 가동해 생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와 같은 MMT의 기저에는 정부의 화폐 발행권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숨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 재정은 정부가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려서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정부가 지출함으로써 화폐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먼저 화폐 발행을 통해 정부 지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MMT는 정부는 화폐 발행권을 이용해서 재정을 충당하고 돈이 넘쳐나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을 때엔 세금을 더 걷어 인플레이션 위험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레고리 맨큐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위험한 생각이라고 MMT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나, MMT는 미국 내에서 점점 더 힘을 얻어 가고 있는 듯하다. 올 초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 「적자의 본질(THE DEFICIT MYTH)」의 저자 스테파니 켈튼 박사는 현대통화이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서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민주당소속) 수석경제학자였다. 

또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현대통화이론을 바탕으로 미국 대선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가 재정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공적 서비스를 확대할 시점이고 기존의 재정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MMT는 거시경제정책의 대표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MMT는 미국과 같은 기축 통화국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화폐 발행권을 갖고, 거시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국가라면 이 이론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나라 살림을 걱정하는 우리 당국도 MMT를 도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더 하나 평균 화폐유통 속도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이 돈이 결국 소수 경제주체의 자산 거래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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