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는 이후 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는 운동으로 전개돼 널리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2018년 법조계에서 시작돼 연예, 정치, 교육, 스포츠업계 등 다양한 조직에서 부당한 성추행 및 성폭행이 있었음을 용기 있게 밝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위계를 앞세운 군대 내 성범죄의 심각성이 고발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라는 인식 대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혹은 해도 괜찮은 수하라는 인식과 비뚤어진 성인지 감수성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가해자는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는 데 반해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는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홀로 신음한다. 2015년 작 ‘스포트라이트’는 성폭력 피해를 당해 영혼마저 피폐해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가 밝혀 낸 충격적인 실화를 영화화했다. 

미국 내 영향력 있는 일간지로 꼽히는 보스턴 글로브에 새 편집장 마티가 부임한다. 주민들 대다수가 천주교인 이 지역에는 예전부터 신부의 아동 성폭력 이야기가 돌았지만 잠시 반짝할 뿐 수면 위로 올라오진 못했다. 유대인 출신인 마티는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보스턴 가톨릭 교구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 취재를 허락하고, 취재팀은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기도 전에 굳건한 장벽을 마주한다. 생각보다 뿌리 깊은 저항에 직면하지만 탐사보도팀은 굴하지 않고 취재를 이어간다. 

추적을 멈추지 않은 보도팀은 그간 금기의 영역이라 느껴질 만큼 단단하게 감춰져 있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성공한다. 보스턴의 전체 사제인 1천500여 명의 6%에 해당하는 90여 명이 가해자였음을 밝혀 낸 언론사는 2002년 지면을 통해 지역민과 전 세계에 진실을 알린다. 이후로도 600여 개의 탐사 기사를 통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증언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보스턴 내 사제들의 성추문을 세상에 알려 2003년 미국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 수상 당시 선임 편집자 로비는 "생존자들의 생생한 고통과 그들이 겪은 아픔을 생각하면 수많은 축하인사에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범죄에서 피해를 본 당사자를 피해자라고 지칭하는 것과 달리 이 사건에서는 ‘생존자’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육체적·정신적 고통만이 아닌 영적인 충격에 빠져 다수의 어린 피해자들이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그런 까닭에서 자극적인 영상을 최소화했다. 영화는 성추행 상황을 재현해 보여 주는 방식에서 철저히 벗어나 어디까지나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기자들의 취재 열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영화는 피해자의 아픔을 감정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침착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힘이 없어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언론, 이를 통해 부조리를 방관하지 않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정화돼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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