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장
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장

부진정연대채무란 여러 명의 채무자가 같은 내용의 채무에 대해 각자 독립해 채권자에게 전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그 중 1인이 변제를 하면 모든 채무자가 채무를 면하는 다수 당사자의 법률 관계로서 민법상 연대채무에 속하지 않는 채무이다. 그 예로는 공동 불법행위 가해자들의 손해배상 채무, 피용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배배상채무와 사용자의 배상채무 등이 있다. 

대법원은 종래 민법상의 연대채무와 구별되는 부진정연대채무 개념을 인정하면서 채권자의 채권 만족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변제 등에 대해서만 연대채무와 같이 절대적 효력을 인정했다. 이러한 판례 취지는 채권자 보호를 위해서 부진정연대의 관계에 있는 채무자들의 자력 여부와 관계없이 채권자에 대한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보장하려는 데 있다.

A는 자신의 부동산을 임대해 그 보증금으로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공인중개사 B에게 부동산임대를 의뢰했다. C는 B의 중개보조원이었다. A는 C에게 임대보증금 수령과 대출금 상환을 위임했으나, C는 임대보증금과 상환부대비용을 횡령했고, 후에 그 중 5천만 원을 A에게 변제했다. 법원의 판단에 의하면, A에 대해 C는 1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B는 (A의 과실이 인정돼 과실상계에 의해) 그 60%인 6천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여기서 문제 된 것은 앞서 C가 A에게 변제한 5천만 원의 효과였다. 즉 C가 A에게 변제한 5천만 원이 C가 단독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부터 소멸시키는지 아니면 B의 과실비율에 상응하는 금액만큼 B와 공동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도 소멸시키는지 여부였다. 원심은 C가 변제한 5천만 원 중  B의 과실비율에 상응하는 3천만 원은  B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의 일부로 변제된 것으로서 B의 손해배상 책임은 그 범위에서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심에 따를 때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B가 먼저 5천만 원을 변제한다면 C의 채무는 5천만 원이 남게 된다. 그러나 C가 먼저 5천만 원을 변제한다면 B의 책임은 3천만 원이 소멸해 3천만 원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A는 B에게 3천만 원만을 변제받고 남은 2천만 원은 C에게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C가 무자력인 경우 A의 채권회수에 문제가 되며, 채권자에게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도록 할 근거가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금액이 다른 채무가 서로 부진정연대 관계에 있을 때 다액채무자가 일부 변제를 하는 경우 변제로 인해 먼저 소멸하는 부분은 당사자의 의사와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확보하려는 부진정연대채무 제도의 취지에 비춰 볼 때 다액채무자가 단독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액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해 과실상계를 한 결과 타인에게 직접 손해를 가한 피용자 자신의 손해배상액과 달라졌는데 다액채무자인 피용자가 손해배상액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 적용되고, 공동불법행위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과실비율이 달라 손해배상액이 달라졌는데 다액채무자인 공동불법행위자가 손해배상액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또한 중개보조원을 고용한 개업 공인중개사의 공인중개사법 제30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액이 과실상계를 한 결과 거래당사자에게 직접 손해를 가한 중개보조원 자신의 손해배상액과 달라졌는데 다액채무자인 중개보조원이 손해배상액의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다7423 6 전원합의체 판결)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해 종전의 상반된 대법원 판례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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