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8일 대법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국정원장 3명에 대해 재상고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남재준 전 원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에게는 각각 징역 3년, 징역 3년6개월·자격정지 2년의 실형이 내려졌다. 전직 국정원장 3명은 자신들의 재임 시절 국정원장 앞으로 배정된 ‘특수활동비’ 중 각각 6억 원, 8억 원, 21억 원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원(상납)해 국고 손실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정원장들이 자신들의 직무 수행을 위해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엉뚱한 곳에 썼으니 처벌 받아 마땅하다.

검찰의 ‘특수활동비’도 엉뚱한 곳에 쓰이는 일이 많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이영렬 서울지검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불구속기소로 마무리하고, 법무부 안태근 검찰국장과 지난 2017년 4월 21일 저녁식사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안태근 국장은 서울지검 간부들 6명에게 각각 100만~70만 원이 든 봉투를 전달했고, 이영렬 지검장은 법무부 간부 2명에게 100만 원이 든 봉투를 전달했다(소위 ‘돈봉투 만찬사건’). 이때 검사들끼리 주고받은 돈의 출처도 ‘특수활동비’로 밝혀져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한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배우자인 김건희 씨와 관계가 있어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 씨의 사건을 돌봐준 것으로 의심받는 양재택 전 검사는 2020년 4월 KBS ‘시사기획 창’과 한 인터뷰에서 "잘 모르는 최은순이 왜 미국에 있는 (내) 와이프에게 (약 2만 달러의) 돈을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계좌이체가 아니라 현금으로 갚았다. 매달 나오는 특수활동비를 몇 달간 모아서 줬다"고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이런 사례들은 아마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엉뚱한 곳에 쓴 사례는 비단 국정원과 검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엉뚱하게 쓴 공직자들을 사정기관(공수처, 경찰, 감사원 등)에서 엄정하게 수사·감찰해서 그 죄책(국고손실, 횡령·배임 등)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검은 돈’으로 활용되는 ‘특수활동비’를 전면 폐지하고 정당한 비목의 예산으로 편성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직무 활동에 써야 하는 돈을 엉뚱하게 쓰는 사례는 비단 국가의 권력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부문에도 널리 퍼져 있다.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례(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가 매우 흔하다. 지난 2018년 9월 5일 강원도 강릉의 한 협동조합 조합장이 업무상 횡령 혐의로 수사받던 중 숨진 채 발견돼 지역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조합장과 노동조합 간에 갈등이 격화되던 중 "조합장이 업무추진비를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등 6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장을 검찰에 고발했었는데, 수사 도중에 조합장이 자살한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을 보면 ‘업무추진비’를 업무 수행과 무관한 용도(사적인 식사비, 선물비 등)에 사용하는 것이 "무슨 큰 대수냐"며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고 묵인해주는 일도 많다. 그러나 ‘업무추진비’는 엄연히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용도에만 써야 한다. 만일 다른 용도에 쓰면 ‘횡령죄’ 또는 ‘배임죄’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요즘 행정부처 등 공공기관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한다. 노동조합·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부쩍 늘고 있다. ‘특수활동비’든 ‘업무추진비’든 정해진 용도에 정당하고 투명하게 써야만 한다. 과거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과감하게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낭비가 전혀 없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은 우리 사회가 크게 칭찬해야 할 모범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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