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유명인들이 방송에 나와 자신의 18번 노래를 맛깔스럽게 부르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저도 한때는 이장희 씨의 ‘그건 너’에 매료됐고, 어느 때는 ‘사노라면’에 푹 빠져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라는 대목을 친구들과 함께 부르면서 눈물을 훔치던 기억도 납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제 노래 역시도 바뀌어 왔습니다. 누구에게나 18번 노래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이 돼 주곤 합니다.

유명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세상에 오직 한 곡밖에 없는 ‘나만의 노래’가 있어서, 힘겨울 때마다 위로받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며,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잊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류시화 저)」에서 그런 노래가 어느 작은 부족민들에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기에 대한 생각이 처음 떠오르면 여인은 숲속 나무 아래에 앉아 장차 태어날 아이의 노래가 들릴 때까지 기도하고 명상합니다. 최소한의 물과 음식에만 의지하며 며칠을 기다린 끝에 미지의 세계로부터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마을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알리고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 모두 그 노래를 함께 따라 부릅니다.

노랫소리를 통해 아이의 영혼은 자신이 이 세상에 행복하게 초대됐음을 느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아이 아빠가 될 남자에게도 노래를 가르쳐주고, 그와 잠자리를 갖기 전에 부부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곧 아이의 존재 자체라고 믿는 것입니다.

마침내 아이가 잉태되면 여인은 뱃속 아이에게 그 노래를 불러주고, 열 달 동안 마을 여인들 모두가 계속 불러줍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산모 주위에 마을 여인들이 둘러앉아 그 노래를 불러주면서 아이를 맞이합니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만의 노래를 들으면서 세상과 첫 대면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자신만의 노래를 가졌다는 것과 그것을 마을 사람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노래에는 자신의 사명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노래가 다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만의 노래는 삶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시련을 만났을 때 의지가 돼 주고, 자신이 혼자라 느낄 때도 주위 세상과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 노래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는 마음이 온전히 돌아오게 해준다. 그러니까 자기 노래를 가진 자는 그 노래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거다.

마침내 그가 삶을 다하고 임종의 자리에 누우면, 부족 전체가 모여 마지막으로 그의 노래를 불러준다. 태어날 때처럼 작별할 때도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기가 떠나온 영혼들의 세계로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돌아간다. 부족의 영혼들 역시도 그의 노래를 부르며 그를 기쁘게 맞이할 거다. 그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죽어서도 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모든 존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지만 사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대단히 높은 경지의 깨달음이 틀림없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올려 봅니다.

온갖 편견으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을 나누고, 가진 자들이 쳐 놓은 높은 담장 때문에 진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갖지 못한 자들의 눈물과 깊은 한숨이 보입니다.

이런 삶과는 달리 저들의 삶, 저들의 노래, 그리고 모두가 그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은 마치 천국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나만의 노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힘겨울 때나 외로울 때 힘이 돼 주고, 제가 다시 벌떡 일어나 거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노래를 이제부터라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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