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국뽕’이란, 왜곡된 애국심에 젖어 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인터넷 신조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이 단어가 유튜브를 통한 콘텐츠 제작과 업로드가 활성화된 현재,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견강부회와 아전인수의 태도로 자국을 옹호하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학계에서는 그전부터 극단적 민족주의(쇼비니즘)라고 규정하며 우려를 나타내 왔다. 

하지만 사실 왜곡은 물론 특정 민족이나 종교, 국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이러한 국수주의적 태도는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온갖 민망한 폐해들을 양산하는 중이다. 자국의 장점이나 타국의 단점을 편향되게 바라보고 침소봉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사실 진정한 애국(심)과는 거리가 멀다. 진심으로 자신(국)을 사랑한다면 단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순간의 ‘정신적 환각’을 위해 자신(국)의 장점만을 편향되게 바라보는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일이다. 

도쿄올림픽이 시작된 지 일주일쯤 지났다. 평소 스포츠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 타국에서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을 응원해 주기 위해, 퇴근 후 유튜브를 통해서 경기 결과를 가끔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유튜브에 올라온 개인 유튜버들의 수많은 올림픽 소식들을 클릭하는 순간 우울하고 부끄럽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쿄올림픽은 개최 이전부터 말이 많았던 행사다. 코로나가 전 지구적으로 창궐하는 이 시국에 전 세계 스포츠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경기를 치르는 게 위험천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이 형편없는 스가 내각으로서는 올림픽을 계기로 정세를 역전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테지만, 아니나 다를까, 워낙 악조건 속에서 행사를 치르다 보니 구설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솔직히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고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나 역시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현재 드러나고 있는 일본의 ‘헛발질’이 안쓰러워 연민을 느낄 정도다. 운영 시스템은 엉망이고, 자원봉사자들은 대거 사퇴했고, 행사 중에도 코로나 확진자는 수천 명에 달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선수촌 환경은 연일 세계 언론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태풍은 다가오고…… 그야말로 일본은 야속하고 부끄럽고 비감해진 마음으로 울고 싶어 미칠 지경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견했으면서도 각국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게 될지도 모를 오리무중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 이유는, 4년간 흘린 땀방울을 몸이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선수에게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기에, 어떤 선수에게는 자신의 기량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또 어떤 선수는 대물림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올림픽에 참가했을 수도 있다. 설사 반사이익을 염두에 두었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위해 땀 흘리며 노력했으므로 비판할 이유는 없다. 

모든 선수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개최국 일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SNS나 유튜브를 통해서 접한 유튜버들의 일본 올림픽 관련 콘텐츠들은 경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거나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거나 혹은 외국 선수들의 선수촌 생활을 소개하는 영상이 아니라 대부분 주최국 일본을 희화화하거나 저주에 가까운 험담을 쏟아내는 것들이었다. 주인이 아무리 못났어도 현재 큰일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웃고 힐난하며 막말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듯이 상대국에 대한 태도를 통해 국격과 국가의 품위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 일부 유튜버들이나 네티즌들이 보이는 국뽕에 취한 모습들은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일 뿐 아니라 세계인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변형된 형태의 쇼비니즘은 상대와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물론 ‘국뽕’에 젖은 유튜버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도발했기 때문에 미러링을 통해 응전하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그런다고 자신도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문제의 상대와 자신이 다를 게 무엇인가. 이전투구일 뿐이다. 상대의 미숙함은 이해해 주고, 더러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한편, 잘한 일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는 게 대범한 모습이다. 지나친 비웃음과 힐난 배경에는 보복심리나 열등감이 내재한 경우가 많다. 그런 식의 저주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순간의 만족감 말고는 없다. 

저주는 또 다른 저주를 낳을 뿐이다.억지 논리로 사안을 왜곡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적대와 보복으로 풀려는 것도 크나큰 문제다. 하니, 부디 대범해지자. 그것이 적대의 악순환을 끝내는 길이다. 국뽕들은 국적 불문하고 발본해야 할 위험한 바이러스들이다. 그렇듯 비웃음과 저주의 대상인 바로 그 나라, 그 현장에서 오늘도 각국 선수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경기에 임하고 있다. 그들의 땀방울과 벅찬 눈물의 이력만이 모두가 기억해야 할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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