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지난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이 창립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전국적으로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축하하는 붉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베이징에 문을 연 ‘공산당 역사전시관’을 찾은 시진핑 국가 주석은 "개혁, 발전, 안전을 조화롭게 완성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정당을 가졌고 많은 굴곡 속에서 세계를 향해 ‘중국몽’을 자신 있게 외치는 것을 보면 이율적 감정을 어쩔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중국몽은 국가 부강, 민족 진흥, 인민 행복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포함한다. 

마오쩌둥의 고난의 대장정으로 시작해 이제는 ‘샤오캉(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에서 세계 최강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 기세는 거칠 것이 보인다. 1인당 GDP가 이미 1만 달러를 훌쩍 넘었고 전체 GDP도 15조 달러를 넘어 섰다. 집권 초기 시작된 부패와의 전쟁으로 시 주석은 빈부격차 확대와 관료사회 부패에 따른 민심 이반을 막는 동시에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함으로써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만들고 8년 전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내놓아 자국의 경제 영토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차적으로 성공했다. 이어서 시 주석은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도 선언했다. ‘중국 제조 2025’다. 5세대(5G) 이동통신, 반도체, 희토류 등에서 미국을 배제한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하겠다는 야심이다. "발 밑의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너라"던 덩샤오핑의 조심스러운 충고는 이미 신화처럼 됐다. 

공격적인 ‘전랑(늑대전사 외교)’는 그 결과는 속단하기 이르지만 일단 먹히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국과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일갈은 섬뜩한 자신감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라고 난제가 없을까? 한두 가지가 아니겠으나 우선 빈부격차와 인구 감소에 따른 성장률 둔화 등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일당 지배 고착화에 따른 부패 문제도 극복 과제다. 미국과의 갈등과 좁혀오는 서방 국가들의 포위망을 어떻게 뚫을지도 결코 간단치 않다.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일당독재의 어두운 그늘과 인권 침해·반민주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모르는 척 할 수는 결코 없다. 따라서 중국은 중국몽이 가까워졌다고 호언장담하기에 앞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블랑쉐 연구원의 지적처럼 ‘위험한 도박’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당시 권력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화하고 곧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국제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뭐라고 했던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시 주석이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를 넘어 마치 창업자 마오쩌둥의 급수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직도 우리가 중국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덩샤오핑의 그 말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중국 역사 4천 년 가운데 실용주의적 사고는 면면히 이어져 왔다. 표현을 달리할 뿐. 그들이 힘을 가지면 주변 국가를 징벌했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들 위에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나라 이름부터 세계의 중심 국가라는 오만과 자부심이 똘똘 뭉쳐 있지 않은가. 요즘 그들이 이룬 경제 기적은 세상의 부러움을 산다. 40년간의 위대한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으나 이제 100년의 도약을 바탕으로 중국이 보다 성숙해지기를 기대하는 건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성숙이란 한마디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 주변 국가에 대한 대국으로서의 풍도, 자국 내에서 보다 민주적인 국가 운영의 기틀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복잡다단한 세계 정세 속에서 북한과 더욱 단결하고 협력해 세계 사상 유례 없는 북·중 관계를 더 다지겠다는 거야 탓 할 수 없겠으나 대한민국에 대해서 무리수를 계속한다면 지난 성과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사명감에 불타는 지도자가 역설적으로 비극을 낳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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