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폭군(tyrant)이란 단어는 코빌드 영영사전에 "자신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 단어는 전제군주, 압제자, 독재자 등으로도 해석된다. 왕이 아니어도,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독재자다. 역사 속의 왕들에게서 이런 사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지금도 정치권에 얼씬거리거나 권력에 마력(魔力)을 느끼는 자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인간 유형이다.

정치꾼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정치 행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거짓말도 반복하다 보면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자신이 한 말이 진짜라고 믿게 된다. 자아도취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다. 부정적 측면의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자들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들은 정당이나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기만과 술책을 교묘하게 포장해 숨긴다.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 행사하는 힘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3세’라는 극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리처드3세(1483∼1485)는 영국에서 형제와 조카를 죽이고 왕에 오른 인물이다. 맏형 에드워드 4세가 죽자, 작은 형 클래런스 공작을 반역죄로 몰아 큰 포도주 통에 가라앉혀 죽이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조카(에드워드 5세)를 섭정하다가 런던탑에서 죽게 한 무정한 인간이다. 그런 연유로 그는 왕위에 오른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정치적 패자를 철저히 악한으로, 몸과 마음이 비정상적이고 항상 왕관에 눈이 가있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영국 장미전쟁의 종결을 의미했을 뿐 아니라 플랜태저넷 왕조가 끝나고 새로운 튜더 왕조를 열게 했다. 우리나라의 세조와 연산군, 광해군의 이미지를 합해 놓은 포악한 인물로 셰익스피어는 그를 그리고 있다. 이런 부도덕하고 극악무도하게 살육을 저지르는 자가 왕좌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에게 동조하거나 협조한 인물들이 그가 권력을 창출하고 지탱하게 만들었다. 리처드 3세에게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에게 직·간접으로 협조한 인물들은 누구였는가?

셰익스피어 학자로 그의 사극을 분석한 스티븐 그린블랫은 이 사람들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독재자에게 완전히 속아서 그의 말과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자들. 이들은 속거나 희생당하여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둘째, 괴롭힘과 폭력의 위협 앞에 겁을 먹었거나 무기력해진 사람들. 셋째, 독재자가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내면도 철저하게 사악한 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넷째, 독재자가 형편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잘 굴러갈 것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 다섯째, 독재자의 집권으로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불행하게도 이들은 독재자가 집권한 후 제일 먼저 제거 당했다. 여섯째, 독재자의 명령을 별 생각 없이 묵묵히 수행하는 자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사람의 예로 아돌프 아이히만을 들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인물이다. 

누구라도 독재자의 협조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는 범위 설정일 수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로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권에 있으면서 드러내 놓고 독재자를 돕고, 이런 행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치꾼들이 있다. 이들은 왜 그럴까?

마키야벨리는 정치의 본질은 기만과 폭력이라고 말한다. 정치꾼들은 부정직하고, 서로 불신하며,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는 일에 능숙하고, 자신이 덕성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덕성스러운 체하며 그런 허세를 통하여 실은 자기가 선량한 사람이라는 자기망상의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이런 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폭군과 독재자의 협조자, 동조자들이 정치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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