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지난주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우리나라는 전력이 앞선 터키를 상대로 드라마와 같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우리 대표팀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터키 대표팀은 흐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패배한 여느 팀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애잔했습니다. 터키 전국에 산불이 나서 일주일 넘게 화재 진압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터키 선수들은 꼭 승리해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힘을 주겠다고 다짐했는데,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긴 한국팀에 패했으니 얼마나 좌절감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된 한국인들이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자는 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올림픽 메달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험난한 길을 달려온 두 팀이 흘린 눈물이 그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어 기쁘고 흐뭇합니다. 

3년 전 일간지에 사진 한 장이 실렸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3월 21일, 경남 창원의 어느 육교 위에서 우비만 입고 현수막을 정비하던 자율방재단원에게 한 어린이가 자신의 우산을 씌워 주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서울신문, 2018.4.10). 자율방재단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바람도 불고 비도 오는데 위험하니 집으로 가라고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고 전했습니다. 그 어린이는 진해 덕산초등학교 4학년 김수빈 양으로, 그녀는 "그냥 지나치면 제 마음이 불편하고, 그렇게 하면 제 마음도 편해져서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한 장면이었습니다. 

「제비꽃」(정채봉 저)에 나오는 대화가 떠오릅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꽃잎이 크고 빛깔이 진하고 향기가 많이 나면 아름다운 건가요?" "그런 것은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럼 진짜 아름다움이란 어떤 건가요?" "아름다움이란 꽃이 어떤 모양으로 피었는가가 아니야. 진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좋은 뜻을 보여 주고 그 뜻이 상대의 마음속에서 더 좋은 뜻이 되어 다시 돌아올 때 생기는 빛남이야." 맞습니다. 진짜 아름다움이란 주어서 내가 행복하고, 그로 인해 그가 용기를 내게 하는 것, 그리고 그가 훗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손을 내미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면서 세상을 조금씩 더 아름다움으로 물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연용호 저)에서 저자는 에콰도르 축구선수들의 선행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선행이 마치 터키에 묘목을 보내자고 하는 한국인들이 연상돼 기뻤습니다. 200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에콰도르가 영국과의 경기에서 패배하자 선수들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들이 월드컵에 참가한 최고 목표는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었다는 겁니다. 수비수 울리세스 라 크루스는 "어렸을 때 살았던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병원에 가려면 한 시간이나 걸려 시내로 나가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모아 재단을 세웠고, 영국의 아스톤빌라 팀에서 뛰게 된 뒤로는 병원을 만들고 200명 정원의 초등학교까지 만들었습니다. "돈을 위해 축구를 하냐고요? 그래요. 축구를 하면 저도 행복하지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한 주장 이반 우르타도는 자신의 월급 대부분을 고향 마을에 투자해 집 없는 아이들 150여 명을 위한 보호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미드필더인 에디손 멘데스는 어릴 적 공을 차며 놀던 흙바닥에 학교를 짓고 유소년 축구재단까지 세웠다고 합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수빈 양이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영광을 이뤄 냈지만 그 성취의 결과를 희망 없는 고향 아이들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에콰도르 축구선수들 모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일 겁니다. 자신의 성취가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니까요. 부디 터키에 보내질 묘목으로 터키 국민이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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