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객원논설위원)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객원논설위원)

매미 소리의 절정기는 팔월이다. 주변은 된통 아침저녁 없이 떼창이다. 사람에겐 막바지 무더위의 여음쯤으로 들릴지 모르나 그들에게는 사랑의 대합창이다. 짧게는 일주간 남짓한 나무 위에서의 삶을 치열한 성애(性愛)로 마감한다. 그 삶을 위해 6~7년 세월을 땅속 유충 상태로 보냈으니 99% 이상 인고한 셈이다. 이른바 ‘적막한 황홀’의 한 모습이다. 땅속에서의 기나긴 인고 세월은 적막했으나 땅위에서의 소프라노 열창 끝 열매는 황홀하다. 수액과 이슬만 먹고 내 집 없이 살다갔음에 3세기께 진나라 육운이 읊은 5덕의 군자송은 시방도 곧잘 회자된다. 탐욕과 불의가 난무하는 때라서 더 와 닿는다면 억설일까. ‘적막(寂寞)’은 쓸쓸하고 고요해 흔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나 무의미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가만히 눈 감으면/ 적막은 잊고 지낸 자아를 언뜻 되살리는 파란 등불/ 사위는 늘 파란 등불로 명멸하는 적막의 연속이건만/ 우리는 그 적막의 존재까지도 까마득히 잊어가면서/ 세상의 흐름에 실린 객체가 되어/ 스스로는 늘상 오만한 주인장 행세를 한다… 늘 함께하는 우리네 친구, 적막이건만/ 밤에 무수히 도란거리는 별을 잊어버리듯/ 우리는 까마득히 그를 잊고 산다∥별은 밤에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별은 그 모습 그대로 늘 있으되/ 낮에는 빛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적막은 별보다도 더 우리들 가까이에 있으면서/ 우리 본래의 슬픔과 기쁨을 다시 보자고 외치건만/ 홍진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네에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나의 졸음 장시 ‘우리네 친구, 적막’의 일부를 재편집했다. 

 나는 1990년대 무렵 일상에 지쳐 청평 대성리 물가에서 하루 민박한 바 있다. 처음에는 무료한 적막뿐이었다. 시골 밤 정취 속에 멍 때리는 순간, 웬걸 귓전을 울리기 시작하는 자연의 묘음은 귓속으로 속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이 감전된 듯 경락이 뚫리고 뇌파가 활발해졌다. 적막은 ‘무음’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겪어온 주변 사물들의 뭇 소리를 다 어울려 들려주는 우주의 아름다운 화음이었다. 밤새 갈겨 베껴 쓴 것이 그 작품이었다. 날이 새자 잠 못 잔 피곤은 간데없고 날아오를 듯 황홀경 그 자체가 나를 감쌌다.

 알다시피 본 칼럼 제목은 문학의 수사법상 패러독스 기법을 활용했다. 서로 모순된 듯한 두 용어를 사용하여 보다 강렬한 인식과 한 단계 높은 조화를 추구한다고 할까. 이와 반대로 제목을 붙인 ‘황홀한 적막’이라는 내 창작시집이 있다. 두 가지 경우는 다른 것 같지만 깊이 새겨 보면 상통함을 느낄 수 있다. 제32회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우리에게 진 터키 팀 선수들이 흘린 소리 없는 눈물을 본다. 그 눈물은 곧 ‘황홀한 적막’이었다. 세계랭킹 4위 팀으로서 그간 치른 경기는 황홀이었다. 패배의 순간은 적막이었으나, 그 눈물은 최선을 다한 뒤 나온 영광의 카타르시스였다. 인간 본연의 순수로서 다시 황홀로 이어지는 거였다. 이로써 ‘적막한 황홀’이나 ‘황홀한 적막’이나 맺은 열매는 죄 값지다고 하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끝난 뒤 보여 준 양국 선수들의 어깨동무 화합 광경이 떠오른다. 이번 배구 경기 후에도 터키 남부 대규모 산불 사태에 우리의 묘목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단다. 황홀과 적막의 조화로운 모습들이다.

 지난 5월호 KDI 발간 ‘나라경제’에서 2018~2020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중 최하위권인 35위라 했다. 게다가 델타 플러스 변이 코로나에 ‘충북동지회’ 간첩혐의 구속사건, 차기 대통령 후보 간 비방 상황 따위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마치 태풍 전야 고요 같다면 나만의 기우일까. 앞의 내 장시를 재편집해 잇는다. "적막은 저 광대무변한 우주의 온몸이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친구/ 우리 쓸쓸하고 괴로울 때면 적막의 노래를 부르자/ 적막은 늘 우리 곁에서 미소 지으시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이니…" 오늘도 추억 서린 연분홍 봉선화는 물들고, 노오란 천수국·만수국들이 팔월을 꽃피운다. 우리 현생도 기나길고 적막한 전생에 비해 짧디짧을 것이다. 섬돌 어디선가 어언 귀뚜리 운다. 가을 문턱에 역설적 시조 올린다.

 - 참소리 적막 -

 겉으로만 대하다간

 아무 소리 못 듣는다

 

 그 속내를 들어서야

 오만 소리 다 들린다

 

 얄궂은

 이내 세상도

 황홀하게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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