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전 인천대 겸임교수
김호림 칼럼니스트/전 인천대 겸임교수

인류는 왜 이상향이라는 공동체를 추구했을까? 현실 세계, 즉 국가라는 공동체가 그들을 만족시켜 주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는 대상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국가는 이익집단이 아니어서 국가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개인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그 체제를 이탈하지 않는 한 개인은 그 안에서 운명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5일은 이 나라의 ‘해방기념일’이기도 하고 ‘독립기념일’, 즉 ‘건국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광복절이라고 불러왔다. 그 뜻은 ‘무엇으로부터 영광스럽게(光) 되찾은(復) 날’을 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영광스러운 날이 몇 주년이 경과됐는지에 대해 나라 안에서 의견 일치를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76주년이고, 1948년 건국을 기준으로 하면 73주년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1919년 임시정부를 기준으로 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 우방국에서는 1948년 독립을 기준으로 우리 정부에 경축을 보낸다고 한다. 독립된 국가의 정확한 연수를 서로 달리 알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날 15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장악한 후 수도 카불로 진입, 탈환했다는 불길한 소식에 이어 대통령의 탈출과 그곳 국민이 보인 아비규환의 공황 상태는 1975년 사이공 함락 사태를 연상케 했다. 그때도 평화협정에 따른 미군의 철수가 비극의 기폭제였고, 지도자는 금괴를 가지고 대통령궁 옥상에서 헬기로 탈출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태를 보며 헤겔이 그의 「역사철학 강의」에서 "국가와 정부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끌어내어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라고 한 경구는 진리라고 생각했다. 왜 미국은 두 전쟁에서 똑같은 치욕을 감수해야 했고,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월남 국민이 패전으로 겪었던 생지옥의 비참한 경험을 다시 직면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국가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를 중국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으로 여기는 지식인도 있다. 이 성은 변방의 야만족이라고 불린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나 국내적으로는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가두는 목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는 것은 곧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국가가 존재해야 할 기본적인 이유이고 역할이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국가를 가리켜 배타적 집단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타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권력 집단이 된다. 즉 국가의 지속적 존속과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막스 베버는 "국가는 물리적 폭력의 정당한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성공적으로 획득한 인간공동체"라고 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러한 배타성을 가진 국가가 추구했던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구축하는 부국강병책이다. 이를 통해 국가는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낼 수 있고, 국민은 그러한 환경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국가에 주어진 지상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사이공과 카불의 함락은 평화협정이란 환상에서 시작됐다.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한다면 미군 철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냉엄한 현실 세계에서는 논리보다 힘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가 운명을 가를 수 있는 남북 문제에 있어서 ‘종전선언-평화협정-미군 철수와 UN 사령부 해체’라는 외부 세력의 기만 책략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인류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서로 신뢰받는 파트너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존엄성과 가치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국가를 존속·번영시키는 것이 우리가 찾는 이상향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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