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한반도의 양쪽에 자리한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일까? 지난해 타계한 동아시아 연구자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두 나라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를 1천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타계 직전에 출간한 「중국과 일본」에서 그는 일본이 중국의 문명을 받아들였던 7~8세기, 중국이 일본에서 배운 1895~1937년과 1972~1992년 세 시기를 주목했다.

야마토정권이 600년 중국에 첫 외교사절단을 파견한 이후 838년까지가 첫 번째 단계다. 이때 불교와 유교, 율령과 통치 시스템, 문학과 음악, 건축술 등을 중국에서 배운 일본은 견당사와 유학생, 승려들을 보냈고 중국의 승려, 학자, 상인들은 일본으로 몰려갔다. 754년 나라의 도다이지에 도착해 대불상 봉헌식을 주관하고 일본 승려들을 가르친 당나라 승려 감진(鑑眞)이 대표적 사례다. 감진이 죽은 뒤 제자들이 만든 등신불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1980년 이 등신불이 중국에 있는 감진의 고향 사찰로 모셔졌고, 일본의 불교도들은 감진이 가르친 일본의 절에 있던 8세기 석등을 우호의 상징으로 보냈다. 보겔은 이를 예로 들어 양국 국민이 우호 증진을 바랄 때 과거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고 했다.

1862년 일본 대표가 상하이에 도착할 때까지 양국의 공식 접촉은 끊겼고, 1894년 청일전쟁을 맞아 두 나라의 관계는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번에는 중국의 관료와 유학생들이 대거 일본으로 몰려가 메이지(明治)시대의 근대화 경험을 배우려고 했다. 해마다 수백 명의 관료가 일본을 찾아갔고, 수백 명의 일본인 교사들이 대륙에서 일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에서 건너간 유학생이 5만 명에 달했다. 장지동, 유곤일 등 중국의 개혁 성향 실용주의자들의 일본 배우기에 있어 주 연구 대상은 학령기 남아의 75%, 여아의 40%가 4년간 의무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세계의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일본에 간 견학생들은 "이 나라는 어떤 재능도 낭비하지 않는다. 이런 접근 방법을 취하는데 어떻게 교육이 나라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양국 관계는 급속히 적대적으로 바뀐다. 1972년 다나카 당시 일본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를 만나면서 중·일 관계는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결정적 변화는 1978년 중국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해 공식적인 평화우호조약 문서 교환과 함께 진시황 때 서복이 구하러 간 ‘마법의 약’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 마법의 약은 현대화를 이루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덩샤오핑은 일본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다나카 전 총리를 방문한 것이 화제가 됐다. 다나카는 록히드 뇌물 스캔들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중·일 교류 개선을 위해 노력한 다나카의 공로를 기억하고 감사의 뜻을 표시한 것이다. 

1979년부터 1999년까지 해외 개발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은 전폭적으로 중국을 지원하게 된다. 이 20년 동안 중국이 받은 원조의 56%가 일본에서 온 것이었고 보건·교육 등의 사회기반시설, 기술, 엔화 차관 등 세 방향으로 이뤄졌다. 일본이 중국에 파견한 기술자가 4천158명, 중국은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 기술자를 일본에 보내 선진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서예·장기·음악·시 등의 문화 교류도 활발했다. 

보겔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에 과거사를 반성하는 성의를 촉구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반일(反日) 감정을 애국심 마케팅으로 활용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이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로 양국의 협력이 강화되면 두 나라는 ‘뜨거운 관계’는 아닐지라도 ‘따뜻한 관계’ 정도는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동북아의 현실은 보겔의 기대와 전망과는 한참 멀어져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갈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이 취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적반하장 격 태도나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옥죄려는 정책은 더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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