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제주도로 귀향 간 추사는 귀한 책을 구해다 주는 제자에게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줬다.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였다. 흔히 말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말한다. 지조와 절개를 의미해 시나 그림의 소재로 많이 쓰이고 선비나 군자의 영원한 벗이었다. 추위 속에도 꿋꿋한 아취를 잃지 않는 대나무와 매화를 세한이아(歲寒二雅)라 하고 매화와 국화를 세한이우(歲寒二友)라 한다. 

세한우가 겨울철에 빛나는 식물로 시련을 참고 견디는 상징이라면 문인묵객의 영원한 화두가 된 사군자(四君子)는 계절의 순서를 따라 붙였다.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이다. 중국 송원시대 초기 화조화의 주요 소재는 대나무와 매화였다. 여기에 소나무를 더해 세한삼우라 했다. 그 후 대나무를 잘 그렸다는 원나라 화가 오진(吳鎭)이 삼우에다 난초를 덧붙여 ‘사우도’라 칭했다. 그 후 명나라 작가이며 화가인 진계유(陳繼儒)에 의해 비로소 사군자(四君子)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사군자는 원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전국시대 덕망이 높은 네 명의 인물을 기리는 데서 비롯됐다. 네 명의 덕망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소나무를 제외하고 매화, 대나무, 난초, 국화를 정했다. 서재나 글방의 청아한 제물로 홀로 취하면(獨取) 신골(神骨)이 맑아진다 했다.

매화는 여러 이름이 있다. 종류만도 90종이 넘는다고 한다. 눈 내릴 때 피면 설중매, 동지 전에 열매를 맺으면 조매,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고 껍질이 생겨 늙어 보이는 고매, 강매(江梅)라 불리는 야생매, 꽃잎이 이중인 중엽매, 가시와 줄기가 녹색인 녹엽매, 꽃이 푸르다는 녹악매(綠악梅), 열매가 쌍으로 열리는 원앙매를 비롯해 꽃이 거꾸로 드리운 보기 힘든 귀한 도심매(倒心梅)도 있다. 추워야 피는 까닭인가 성삼문의 호가 매죽헌(梅竹軒)이요, 일개 유생의 신분이었지만 한일합방에 항거해 감히 몸을 던진 황현의 호는 매천(梅泉)이다. 

난은 곧은 꽃대에 맑은 향으로 천하일품이라 했다. 향기와 고귀함이 충성심과 절개를 상징한다. 굴원은 특히 난초를 사랑해 200여 두둑의 밭에 가득 심었다. 대나무는 최초에 군자로 기록된 식물이다. 속이 비어 있으되 곧고 강인하다. 한갓 식물로 사람과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하다 했다. 백거이(白居易)의 양죽기(養竹記)에 나오는 대목이다. 대나무는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화원을 뽑는 시험에 대나무 그림이 가장 점수를 많이 받는 과목이었다고 한다. 약하게 보이고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선비를 닮아서 선비를 뜻하는 대나무는 가는 청죽을 그렸다. 

대나무를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 하면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다. 방자한 서릿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정절과 은일을 배웠다. 국화를 유달리 좋아했던 사람은 도연명이다. 많은 시에서 국화가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이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이란 구절이다. 동쪽의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쪽의 산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그게 뭐 어째서 할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국화꽃을 든 채 먼 곳을 바라보며 무아의 지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53세에 쓴 음주(飮酒)라는 20수의 시 중 5번째에 나오는 구절이다. 번잡한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은자의 초연한 심경을 비유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군자를 매란국죽의 순서로 쓰지만 중국은 매란죽국으로 쓴다. 군자나 선비는 고결함이 생명이다. 신분의 고하가 아니라 고매한 품성이 선비의 기질이다. 추위를 이기고 홀로 핀다던가. 청초한 꽃대에 청아한 향, 서리 내리는 늦가을 홀로 피는 모습, 가늘고 속도 텅 비었지만 강인한 식물을 키우고 감상하며 욕심을 거르는 지혜와 의로움을 배웠으리라. 필자는 사군자를 치지도 못하고 집에 기르는 것이라야 숨 쉬기에도 허덕이는 난과 대나무와 소국 한두 분뿐이다. 아무래도 글 속에서나 옛 도자기에 그려진 것으로 배움을 삼아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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