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석 인천시 도시계획국장
정동석 인천시 도시계획국장

경기도와 강원도를 구분 짓는 일명 ‘캐러멜 고개’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지프 운전병이 이 험하고 구불구불한 비포장 고개를 넘다 피로에 지쳐 졸면 상관이 캐러멜을 건네줬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그리고 지프가 고갯길에 들어서면 배고픔에 굶주린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기브 미 초콜릿’하며 미군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참으로 아픈 역사의 일화다. 

캐러멜 고개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경계이자 광덕산과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초입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 등이 어우러져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인기 산행지이다. 보병 7·15·27사단 신병교육대가 있어 매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짧게 자른 머리를 어색해하며 넘어가는 애잔함이 묻은 장소이기도 하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 마켓(Camp Market)의 일본 육군 조병창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시설이다. 앞서 언급한 캐러멜 고개보다 10여 년은 더 앞선 1939년 일본 제국주의는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겠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인 조병창을 짓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소총, 탄약, 포탄 등이 생산됐다.

이곳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미군이 접수해 오랫동안 기지로 사용했는데, 용산기지 등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 재배치를 위한 ‘연합토지관리계획’에 의해 80여 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모든 공여구역이 반환되며, 금단의 땅이자 건널 수 없었던 ‘도심 속 섬’인 캠프 마켓 일대가 오염 정화 작업을 거쳐 역사문화공원으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 캠프 마켓 내 조병창 병원 추정 건물(해방 후 미군기지 부속 건물로 사용. 이후 조병창 건물로 칭함)에 대해 토양오염 정화 필요성에 따른 건물 철거 의견과 역사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 등 상반되는 여론이 동시에 떠오르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인천시 업무소관 총괄 담당자로서 지면을 빌려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는 지난 6월 17일 하부에 유류 오염이 확인된 조병창 건물에 대해 "건축물을 남겨 둔 상태에서는 토양오염의 완전한 정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시민의 건강권 확보 등을 목표로 불가피하게 철거를 결정했다. 다만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복원에 대비한 기록화 작업을 충분히 병행하는 한편, ‘가능한 끝까지 보존’이라는 첫 번째 원칙을 만들었다. 이를 결정하기까지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충이 있었다.

이후 지역에서는 일제 강제 징용의 역사적 증거인 조병창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문화재청 역시 조병창 건물에 대한 가치판단을 위해 정밀조사와 고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박남춘 인천시장님도 보존 가치 건축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투명한 협의·판정·관리에 대한 현안 지시를 내렸고, 특히 캠프 마켓 내 보존 가치 건축물에 대한 신속한 논의와 판단을 강조했다.

이에 업무소관 부서인 ‘캠프마켓과’는 국방부에 조병창 건물 존치 상황에서 오염토양 정화가 불가능한지 등에 대한 의견을, 문화재청에는 조사일정과 내용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의견을 공식 요청했다. 시는 존치든 철거든 ‘역사적 가치 보존’에 공감하는 입장이며, 앞으로 관계 기관 및 전문가, 시민참여위원회 등과 충분히 협의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건축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건강한 생활환경을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앞서 시민에 개방된 캠프 마켓 B구역을 중심으로 시민 소통공간 역할을 할 인포센터 ‘캠프마켓 오늘&내일’이 9월 중 준공하면 체험 프로그램, 현장투어, 문화해설사 안내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 캠프 마켓의 역사·문화·공간을 정확히 알리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제4회 시민생각찾기’ 행사도 캠프 마켓에서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80여 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캠프 마켓은 원도심 활성화 및 시민의 휴식공간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역사적 산실이다. 그리고 미국 대중문화를 소개하고 전파하며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문화적 배경지이기도 하다. 캠프 마켓이 인천의 미래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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