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먹이를 찾기 위해 숲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그만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고통만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호랑이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발목을 스스로 잘라 자유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냥꾼에게 잡혀 죽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과감히 자신의 발을 잘라 버릴 겁니다.

호랑이의 경우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아프지만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말부터 앞세우는 것입니다. 지난달 말 아프간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라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철저한 비밀 유지가 있었습니다. 만약 미리부터 알렸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전투에서만 이런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부부 사이에서도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 분의 신부님이 쓰신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에 묵음의 중요성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영어에 ‘묵음’이 있다. 중·고교 때는 이 묵음이 귀찮았다. 글자는 분명 쓰였는데 발음은 하지 말라고 하고, 발음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글로 쓰지 않으면 틀린다니 말이다. 

이혼 부부 역시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간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랑은 다른 쪽으로 나아가 버린다. 성격이 다르고 가정환경이 다르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처음 가졌던 사랑은 전혀 다른 모습인 미움이란 감정으로 변해 버린다. 사랑이나 미움이 모두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실체인데도 그것을 굳이 따로 떼어놓고 빛만을 또는 그림자만을 진짜로 착각하며 보려고 한다. 그러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부부는 서로에게 묵음이 되어야 한다. 드러나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서로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부부는 서로에게 묵음이다. 또 부부는 서로에게 그림자이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실체와 그 실체의 그림자의 사이, 그것이 바로 부부라는 이름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기꺼이 묵음이 되어 주고 그림자가 되어 줄 때 소중한 사이가 될 것이다."

맞습니다. 두 사람 모두가 ‘나는 너의 그림자!’, ‘너는 나의 빛!’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묵음의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가 말부터 앞세우지 않고 침묵하면서 상대의 고통을 달래 주는 행동을 묵묵히 해 나가게 합니다. 저자의 고백을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원 원장이 직접 강의실에 들어와 취업설명회를 한다. 이 학원은 취업이 목적이라 내가 신부임을 밝히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 주었다. 이 나이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다고 취업이 될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취업을 위해서는 이런 배짱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내보이기보다는 은근히 숨겨야 더 멋진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선, 기도, 봉사와 같은 일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자선과 기도와 봉사는 위선이다. 이 위선을 통한 선행은 참된 선이 아니다. 그런 행동의 이면에는 악마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선을 통해 우리를 더 교묘히 유혹하고 있는 거다. 이런 유혹을 막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사심 없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선(善)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 안에 키우는 것뿐이다."

맞습니다. 사심 없는 마음, 즉 선(善)한 마음이 있어야 말하고 싶어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마치 구출해야 할 아프간인들 중 100여 명의 영·유아가 있다는 것을 안 우리 군이 수송기에 젖병과 분유까지 준비하고 2만㎞를 날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묵음의 지혜, 즉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이 살아가는 태도가 서로의 사랑을 키워 주고 행복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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