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내세우며 경천동지의 정책 전환으로 중국 대륙의 미래를 그릴 때 내세운 것이 선부론(先富論)이었다. 일부가 먼저 부유해지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와 부유하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심지어 1억 명만 부유해지면 나머지는 그들이 먹여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껏 여기에 이론이 없었다. 소득격차가 엄청나게 커지고 불평등 구조에 대한 온갖 시비가 일어날 때도 이 기본은 흔들림 없이 지켜졌다. 경제성장과 과실의 분배라는 두 마리 도끼를 언젠가는 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을 테지만 그 방식은 철저히 공산당 식이었다. 

 지난 7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이 "절대 빈곤을 해결하고 샤오캉(모두가 여유로운 생활을 누림) 사회를 실현했다"고 했을 때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미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그 사이에 누적된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으므로 분배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많았다. 올 들어 각종 규제를 통한 대기업 길들이기와 사교육 단속, 노동권 강화 등의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이유도 그렇다. 부의 독점을 완화하고 경제·사회적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관영 경제일보가 "적절한 시기에 부동산세와 상속·증여세 같은 재산세를 부과해 고소득층의 수입을 조절해야 한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린 까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상속세가 없고 부동산 보유세도 일부 도시에서만 시범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던 것이다. 지난 베이다이허(北戴河:매년 휴가철에 전·현직 지도자들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한다) 회의를 마친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에서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질 높은 경제 발전 속에서 모두가 잘 사는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지도자의 다짐은 어느 체제건 다 나오는 말이다. 하나 시진핑 주석의 속내는 이제 부의 분배에 보다 방점이 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분배보다는 성장 우선의 정책에 일대 변화가 예고된 셈이다. 여기에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야심이 숨어 있다. 집권 초기부터 장기 집권의 길을 닦으며 부패 청산을 내세워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후계 구도를 안갯속으로 만들어 놓은 시 주석의 기반 다지기는 이미 상당히 진전돼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내적으로 경쟁자가 사라졌고 후계자 역시 대놓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권력 기반 강화에는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나라 밖에서 그의 입지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은 얼마든지 많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는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도 신장지구의 독립 성향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고,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반대하는 파키스탄 등의 반중(反中) 시위에 분리주의 독립운동을 벌이는 발루치스탄 해방군(BLA)의 테러까지 심상치 않은 징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파키스탄의 일대일로 반대 시위는 결코 간단치 않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의 요충지 과다르는 중국 신장 카슈카르에서 약 2천800㎞ 떨어져 있으며, 양국은 2013년부터 이 구간에 도로와 철도·송유관·광통신망 등을 건설해 남중국해가 미국에 봉쇄당할 경우에 대비해 안정적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정부는 과다르항을 중국이 지정한 중국해외항만지주회사에 2059년까지 임대해 주는 조치도 취했다. 하나 중국으로부터 차관 등이 빚더미로 변해 파키스탄은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상태이다. 

 자국에서 ‘공동부유’를 내세워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기반을 공고히 다지려는 시 주석의 시도는 해외에서의 무리한 경제적 약탈(?)에 가까운 행위와 중국 우선주의라는 과욕이 쏟아내는 온갖 해괴한 사건·사고에서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 권력은 유한하고 민생은 영원한 숙제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지도자가 어디 중국에만 있겠는가? 요즘 대선 정국에서 보여 주는 자칭 후보자들의 한심한 모습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말 조심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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