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이웃이란 한 동네에 사는 관계만이 아니다. 이웃 나라도 그 범주 안에 들어 있다. 국제정치의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이웃은 우리 옆집의 구성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금 일본에서는 새 총리를 선출하는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히 당내 주요 파벌 수장들이 담합을 통해 사실상 특정인을 추대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젊은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각 파벌 또한 서로 다른 파의 후보를 지지하는 등 결과 예측이 쉽지 않기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아베 신조 전 총리 당시 악화일로를 걸었던 한일 양국 관계가 새 총리의 등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재 지지율 1위인 고노 다로는 ‘자민당을 바꾸겠다’며 개혁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강경 자세다. 예전 외무상일 때 주일한국대사를 향해 "무례하다"고 버럭 화를 내서 외교적 결례를 범한 적이 있다. 당이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언급하고, 보수층이 반대하는 모계(母系) 일왕 검토도 주장했다. 그의 부친 고노 요헤이는 1993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 자격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발표자다. 부친의 담화 내용에 대한 소신을 묻는 질문에 "자민당 정권이 계승해 온 역사 인식을 이어가겠다"고 해 아쉬움을 남겼으나 아베 시절에 대한 강경책에서는 크게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관심 인물은 기시다 후미오.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신사 이미지가 강하다. 아베가 터무니없는 역사 발언으로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노출했을 때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아베를 설득한 사실이 유명하다. 가시다는 지금껏 한국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투의 발언을 한 적이 없으며,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활동을 해 왔다. 다만, 메시지가 밋밋해 일반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세 번째 주목할 인물은 이시바 시게루이다. 반(反) 아베 노선이 뚜렷하고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돋보인다. 인기도 높고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위안부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는 자세를 초지일관 지키고 있어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해 준다. 다만, 그의 파 소속 의원이 17명에 불과해 당내 지지세 면에서 뒤처져 있는 것이 약점으로 꼽힐 부분이다. 그는 지난 9일 방송에 나와서 아베의 지역구 인사를 대거 초청해 물의를 빚은 이른바 ‘벚꽃을 보는 모임’ 사건과 아베 부부가 모리토모 사학재단의 국유지 헐값 매입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모리토모 스캔들’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발언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 외에 다크호스 여성 2인이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와 노다 세이코 간사장. 아베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고노 담화는 물론 현직 총리(1995년)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까지 부정하는 등 거의 극우적 행태를 보이고 있고, 전범들의 묘역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당연하다고 하는 등 문제가 많다. 아베는 이념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다카이치 지지를 선언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노다 세이코는 한일여성친선협회장을 맡는 등 한국에 관심이 많고 양국 협력을 힘주어 강조한다. 남편이 재일교포 3세이지만 이 때문에 한국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파벌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 약점으로 꼽히긴 하지만 반(反) 아베파의 일원으로 주목받는 후보이기도 하다. 

이들 다섯 가운데 누가 총리가 돼도 한일 관계가 빨리 개선되리라고 보긴 어렵지만, 아베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더 긍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충분하고 우리 정부가 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있어 좀 더 유연한 자세로 ‘199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면’ 양국 관계는 호전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아베 시대는 스가 총리의 퇴진으로 완전히 끝날 것인가, 아니면 아베의 후계자가 또다시 집권해 이웃 관계가 더 험악해질 것인가는 이달 말 결정된다. 좋은 이웃을 갖길 원하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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